[기자의 눈]김동원/그렇게 튀고 싶은가

  • 입력 2001년 8월 26일 18시 21분


“현대투신 매각은 빠르면 오늘 중 발표할 수 있다.”(진념·陳稔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 21일 서울 롯데호텔 조찬강연)

“대우차 매각은 미국 제너럴 모터스(GM)와 최선의 협상을 하고 있지만 예정보다 지연된다. 현대투신 매각도 미국 AIG측이 새 요구를 하고 있어 협상타결이 늦어지고 있다.” (이근영·李瑾榮 금융감독위원장, 16일 기자간담회)

한국경제를 조타(操舵)하고 있는 경제장관들이 ‘같은 현안’을 두고 ‘다른 예측’을 했다. 이밖의 경제관료와 여권 인사도 현대투신 매각 등에 대해 ‘월말 타결’ ‘주말 타결’ 등 예측성 발언을 잇따라 내놓았다.

그러나 이같은 ‘결과 맞추기’ 발언은 후유증을 낳고 있다.

우선 실무자들이 혼란스러워 했다. 금융감독위 관계자들은 21일 현대투신 매각과 관련, “오늘 타결되긴 힘들지만 부총리가 발표했으니 어떻게든 맞추어야 하는 것 아니냐”며 난감해 했다.

한국 관리들의 섣부른 ‘협상결과 맞추기’는 또 웃음거리가 되고 있다.

정부측은 23일 현대투신이 AIG측에 팔렸다고 발표했으나 AIG측은 하루뒤 “현대증권 우선주 발행가격을 받아들일 수 없다”고 밝혀 정부측을 곤혹스럽게 했다. 재계의 한 고위관계자는 “우리도 국제협상을 하지만 언제까지 협상이 타결될 것이라는 말은 상대방의 입장을 무시한다는 오해를 살 만하다”면서 “결과적으로 맞지 않을 타결예상을 공언하는 것은 넌센스”라고 꼬집었다.

미국 GM의 리처드 왜고너 사장은 최근 대우차 인수협상과 관련,“한국 정부가 협상 완료시한을 정하고 싶어할 수는 있지만, 우리는 시한을 못박을 수 없다”고 말했다. 정부가 내놓은 시한은 ‘희망사항’일 뿐이라는 것.

고위공직자의 ‘협상결과 맞추기’발언은 협상타결의 공(功)을 차지하기 위한 것으로 비친다. ‘공은 남에게, 책임은 나에게’라는 사심없는 공직자의 자세가 아쉽다.

김동원<경제부>davis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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