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 이사출신인 K씨(53세)는 98년 구조조정 여파로 직장을 그만뒀다. 막상 퇴직하긴 했지만 무엇을 해야할지 갈피를 잡기 힘들었다. 평생을 책상물림만 해온 50대 퇴직자가 다시 직장을 구하기란 하늘의 별따기였다.
결국 손쉽게 생각할 수 있었던 게 소자본 창업. K씨는 생과일 아이스크림점을 선택했다. 외형상 깔끔해서 체면을 좀 차릴 수 있었던데다 힘이 덜 들 것 같았기 때문이다. 당초 일반 아이스크림 전문점도 생각해봤으나 1억5000만원이 넘는 투자비용이 부담스러웠다. 투자한 만큼 수익이 남을지도 확신이 서지 않았다.
K씨는 서울 강남구 역삼역 부근 테헤란로에 있는 대형 업무용 빌딩 지하 아케이드에다 가게를 열었다. 빌딩에 막 입주가 시작된다는 점이 마음에 걸렸지만 3∼4개월만 지나면 수익이 어느 정도 날 것으로 기대했다. 이 브랜드가 국내에서 꽤 알려진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3개월이 지나도 K씨의 매출은 별로 늘지 않았다. 처음부터 사업에 적극적이지 못하고 부인에게 점포를 맡기는 일이 잦았던 K씨는 결국 6개월만에 사업을 정리하고 말았다.’
K씨가 실패한 원인은 크게 두 가지로 꼽을 수 있다. 가장 큰 요인은 사업에 대한 본인의 열의 부족. 몇 번 상담을 해본 결과 K씨는 그동안 사회적으로 쌓아 온 체면을 하루 아침에 버리지 못했다. 현실은 ‘점포 주인’이었지만 머릿속에는 ‘대기업 이사’였던 것.
따라서 아이스크림의 주된 소비층인 사무실 여직원들을 타깃으로 한 마케팅 등은 생각도 못해봤다. 출퇴근길에, 점심시간에 길목을 지키고 서서 맛을 보게 하거나 포인트 누적제 등을 도입하지 못했다.
소자본 창업 시장은 전쟁터와 다르지 않다. 사업을 시작하기 전에 정말 본인이 이 일을 제대로 할 수 있을 지 심사숙고할 필요가 있다. 체면을 버리지 못하겠다면 사업을 시작하지 않는 게 낫다.
두 번째 패인으로는 업종에 대한 막연한 분석을 들 수 있다. 대형 빌딩의 지하 아케이드라는 비교적 좋은 입지조건을 갖고 있었지만 K씨가 실패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생과일 아이스크림이 국내 소비자들에게 어느 정도 호감을 사고 있는 지, 어떤 소비자를 주요 타깃으로 하면 되는지 등을 면밀히 조사하지 않았던 것. 최근 화이트칼라 출신의 창업이 늘면서 비교적 노력이 적게 든다고 ‘착각’하는 업종(예를 들면 제과점 아이스크림점 고시원 인터넷 게임방 등)의 창업이 늘고 있다. 그러나 업종의 특성에 대한 분석없이 달려들었다가는 실패하기 쉽다는 점을 알아야한다.
(중소기업청소상공인지원센터상담사)
nachlas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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