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이즈미 총리가 그같이 방문의사를 밝힌 속뜻은 무엇일까. 고이즈미 총리는 한국과 중국 국민의 거센 반대에도 불구하고 왜곡된 일본의 역사교과서를 승인했고 야스쿠니(靖國)신사도 참배했다. 그 결과 국내 정치적 기반이 어느 정도 확고해진 상태다. 이제 남은 문제는 그 때문에 악화된 한국 및 중국과의 외교관계를 조속히 복원하는 일이라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고이즈미 내각이 등장한 이후 일본의 국제적 위치, 특히 동북아에서의 위치는 크게 약화된 게 사실이다. 한일(韓日)관계는 98년 10월 양국 정상의 ‘21세기 한일 파트너십 공동선언’ 이전 상태로 후퇴했고 일중(日中)관계도 어느 때보다 악화되어 있다. APEC 정상회의나 11월 ‘동남아국가연합(아세안)+3’ 정상회의 등 앞으로 있을 많은 국제행사에서 고이즈미 총리는 스스로 외교적 고립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을 맞게 될 것이 분명하다.
일본이 현재의 외교적 고립상태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먼저 결자해지(結者解之)의 자세를 보여야 할 것이다. 일본제국주의를 미화한 역사교과서를 승인하고 전범들이 묻힌 야스쿠니신사를 참배하고서도 한국이나 중국 국민에게 아무런 죄책감을 느끼지 않는 듯한 고이즈미 총리가 이제 와서 ‘미소외교’를 편들 무슨 효과가 있겠는가. 오히려 더 큰 반감만 살 것이 분명하다. 문제의 원인부터 해결하겠다는 성의 있는 자세를 보이는 것이 일의 순서다. 그래야 신뢰의 싹이 튼다.
이번 고이즈미 총리의 대한(對韓) 대중(對中) 정상회담 얘기가 나온 과정을 봐도 그가 진정으로 그 같은 성의 있는 조치를 취하겠다는 마음가짐인지 의문이 간다. 고이즈미 총리나 일본정부는 공식적으로 한국과 중국과의 정상회담을 제의하지 않았다. 그 대신 일본 언론을 통해 한중 조기방문설을 흘리는 방법을 택했다. 두 나라의 기류를 떠보자는 속셈인 것이다. 이같이 ‘눈치’만 보는 자세로는 곤란하다.
무엇보다 중요한 양국관계를 이 지경으로 만든 책임은 전적으로 일본 정부에 있다. 그 책임을 회피하고 ‘외교적 미소’로 어떻게 슬쩍 넘길 수는 없을까라고 생각한다면 큰 오산이다. 먼저 믿을 수 있는 행동부터 보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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