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국에서 맞이한 결혼기념일에 '고기 부페'에 갔다가 밤버스 타고 12시간 내내 힘들어했던 아픈 기억이 있는지라 손을 맞잡고 앞으로 부페는 가지말자고 다짐을 했던 것도 기억나는 군요. 아무리 미련해지지 않으려 해도 일단 음식이 앞에 보이면 도저히 절제가 안되니까요.
이렇게 무식한 꿈틀이 부부가 두손 맞잡고 한 언약을 깨고 다시 한번 인간의 한계에 도전하게 되었습니다. 스웨덴에서 핀란드까지 가는 호화유람선 '실랴라인'은 유럽 철도 패스인 유레일 패스를 가진 사람에게는 무료로 이용할 수 있는 구간입니다. 덕택에 난생 처음 '호화유람선'을 타보게 되었죠.
선착장에 도착해서 '실랴라인' 광고 선전물을 읽어보다가 두가지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하나는 탑승은 무료이지만 선실(캐빈)을 빌리려면 돈을 내야 한다는 것. 그리고 다른 하나는 북유럽의 고유음식이 가득한 해산물 부페(바이킹)가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선실도 빌리고 부페도 먹기에는 경제적 타격이 너무 커서 우린 잠시 망설였습니다. '아늑한 객실에서 따듯한 이불을 덥고 편히 잠을 자고 준비해간 식빵으로 샌드위치를 만들어 먹으며 부페를 포기할 것인가?' 아니면 '배부르게 해산물을 맛보는 부페를 먹고 갑판 의자에서 이불없이 찌그러져서 잘 것인가?’ 하지만 역시 선택은 길지 않았습니다. 그래 결심했어! 잠은 내일 도착해서 자면 되지. 북유럽에 와서 어찌 바이킹 부페를 지나칠 수 있겠어?
드디어 배가 선착장으로 들어왔습니다. 난생 처음 타보는 어마어마한 규모의 유람선은 비록 영화에서 보는 타이타닉만큼 품격있지는 못했지만(이 공주병 베르사이유 이후 점점 심해지는군요 -_-; ) 10층이 넘는 실내에는 수많은 객실과 수영장, 사우나, 각종 바에 카지노까지 갖춘 말 그대로 호화유람선이었습니다. 홍대리랑 뱃머리에 서서 손벌리고 바람이라도 맞고 싶었지만 우리의 임무를 망각할소냐, 우리는 얼른 '부페식당'으로 발길을 돌렸습니다.
바다가 보이는 통유리를 가진 부페 레스토랑은 밖에서 보기에도 근사하더라구요. 다소 긴장한 표정으로 식장에 입장하자 마치 우리의 속마음을 읽은 듯 종업원이 실실 웃으며 자리를 안내해 주더군요. '자, 천천히... 긴장하지 말고... ' 이렇게 중얼거리며 약 1시간 30분의 전투에 대비한 계획 수립에 들어갔습니다.
우선 효과적인 식사를 위해 지형지물에 대한 탐색전부터 시작했죠. '음... 생선과 해물은 이쪽이군. 맛도 좋고 배도 쉽게 부르지 않은 음식이니 집중 공격 대상!' '차가운 요리는 초반전에 한접시만 먹고...' '저건 뭐야? 닭고기? 감자? 볶음밥? 저런걸 왜 먹지? 뜨거운 요리쪽은 피해야겠는 걸' '과일과 아이스크림이라... 여력이 있을까?' '맥주와 와인도 공짜라... 군침이 돌긴 하지만 배부르게 하는 주역이지... 소화를 위해 한잔 정도만 해야겠군'
이렇게 분단위 시간스케줄을 세운 후 재빠르게 접시를 챙겨들고 부페 대열에 들어섰습니다. 처음엔 남들 하는대로 샐러드랑 빵한조각도 가져왔지만 배부를까봐 슬쩍 양배추 잎으로 덮어버리고 '북유럽 고유 음식'과 '해산물'에 집중 포화를 가하며 넋을 잃은 채로 식사에 몰입했지요. 특히 새우를 좋아하는 홍대리가 벌건 새우를 접시에 산더미처럼 쌓아놓고 손으로 허겁지겁 까먹고 있으니 옆에서 먹던 사람들이 흘금흘금 쳐다보더라구요. 하지만 우리가 그런 눈총에 눈이나 깜짝할리 만무하지요. 실컷 해산물을 가져다 먹은 후 마지막으로 와인과 맥주를 마시며 입가심을 하고 1시간 30분이란 길지 않은 식사를 모두 마쳤습니다.
우리나라 일반적인 부페보다 음식의 종류는 적었지만 연어, 캐비어, 새우, 조개 등의 신선한 해산물이 풍성해서 제값을 톡톡히 했다는 최종 평가를 내렸습니다. 우리나라에서 가끔 먹던 연어가 훈제 연어뿐 아니라 식초에 절인것, 구운것, 찐것 등 다양한 요리법으로 선보였고 북유럽 사람들이 즐기는 이름모를 생선 절임(생선 젓갈?)들도 종류가 다양하더라구요. 그리고 살짝 데친 싱싱한 새우와 우리나라에서 보기 힘든 캐비어까지. 무엇보다 북해 연안에서 바로 건져 올려 너무도 신선한 해산물들이 주를 이뤄 그 맛이 탱탱 그 자체였지요. 한가지 아쉬웠던 점은 해산물 부페에 '회'가 빠졌다는 거지만요. 흐흐...
이런 부페는 북유럽의 독특한 음식문화이기도 합니다. 나라마다 이름이 조금씩 다르긴 하지만 보통 '바이킹'이라 불리우는데 예전에 바이킹들이 배를 타고 침략을 하기 위해서나 장사를 하기 위해서 다른 땅에 도착하면 그 곳에 있는 모든 음식을 한자리에 모아놓고 맛을 보기 시작한 것으로부터 유래되었다고 합니다.
유래야 어찌되었든 우린 지난 며칠동안 '샌드위치'로 허기를 달래던 설움을 한방에 날려버린 셈이었지요. 부른 배를 안고 갑판으로 올라가 늦게야 어스름이 깔리는 땅끝 바다의 아름다운 노을을 바라보니 세상을 다 가진듯 벅찬 기분이 들었습니다. 비록 그날 저녁 의자에 기대어 찌그러져야 했던 잠자리가 불편하긴 했지만 '뿌듯한 포만감'에 긴잠에 들 수 있었던 행복한 한끼 식사였습니다.
식사하다 놀랐던 것 하나. 우리가 '해산물'을 산더미처럼 담아가지고 와서 먹다가 다른 사람들은 뭘 먹나 힐끔 봤더니 감자튀김, 닭다리, 쏘세지, 찐감자, 볶음밥 이런 걸 먹고 있는 겁니다. 허걱! 이 비싼 돈을 내고 바이킹 부페에 와서 찐감자가 왠 말이란 말입니까...
☞ 어디서 먹나요?
「바이킹 요리」스칸디나비아의 전통 요리인 바이킹 요리는 덴마크, 노르웨이, 스웨덴, 핀란드 등 스칸디나비아 각 국의 유명 레스토랑에서 먹을 수 있습니다. 해산물이 주인 부페라서 가격이 만만치 않은데 특히 비싼 곳은 바다가재까지 먹을 수 있다고 하더라구요.
저희가 먹은 부페는 스웨덴의 스톡홀름과 핀란드의 헬싱키 혹은 투르크를 오가는 정기 유람선인 '실랴라인(Silja line)안에 있는 레스토랑에 마련된 음식이었습니다. 같은 구간을 운행하는 유람선으로 '바이킹라인(Viking line)이라는 것도 있는데 양쪽 배 안에서 이런 종류의 부페를 다 운영하고 있다고 하더라구요. 유명한 레스토랑에서 먹는 것보다 가격이 약간 싼편이라고 하니 이 구간의 유람선을 타실 때는 숙박비를 아끼더라도 꼭 한번 시도해 보세요.
☞ 가격 : 바이킹 부페 1인당 187크룬(스웨덴 1크룬=약 134원)
식사시간은 배가 출발하기 15분 전부터 해서 1시간 30분이니 배에 타자마자 식당으로 직행해야 주어진 시간을 충분히 활용할 수 있겠죠? 그리고 일찍 가야 어스름지는 바다에 섬들이 조각조각 떠있는 낭만적인 북해가 바라다보이는 창가 자리에 앉을 수 있답니다.
오늘도 인간의 한계에 도전하고 힘들어하는 꿈틀이 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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