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시민운동, 절차도 정당해야

  • 입력 2001년 8월 30일 18시 45분


시민단체(총선시민연대)가 낙천 낙선운동을 금지한 현행 선거법의 일부 규정을 ‘국민의 참정권 침해’라며 헌법소원을 낸 데 대해 헌법재판소가 이를 뿌리쳤다. 시민운동이라도 절차의 정당성을 지키고 적법하게 전개되어야 한다는 것이 헌재의 판단인 것이다. 법원에서 작년 4·13총선 이래 시민단체 관련 형사재판에서 유죄(有罪) 선고를 통해 수차 확인된 내용이 이번에 헌재에 의해 최종적으로 정리된 의미가 있다.

낙천 낙선운동은 낡은 정치와 진부한 정치인들을 바꾸어 보자는 여망을 타고 갈채를 받았던 것도 사실이다. 또 정치권의 인적 정체를 무너뜨리고 16대 국회에 상당수의 신인이 진입케 하는 데도 어느 정도 기여했다. 그러나 당초부터 공명선거란 곧 준법(遵法)선거를 말하는 것인데, 시민단체가 공명선거를 내세워 실정법을 어기고 준법을 포기하겠다는 주장을 펴는 것은 모순이며, 결과적으로도 큰 후유증을 남길 것이라는 지적이 있었다.

시민단체가 선거법을 불합리하다고 본다면 법 개정운동을 벌이거나 입법 청원운동을 벌여야지, ‘공익목적’만을 내세워 법을 어겨서라도 목적을 관철하겠다는 것은 또 다른 불법과 혼란의 시작이라는 비판이었다. 헌재도 이번 결정에서 ‘시민단체만 낙천 낙선운동을 허용하는 식으로 차별적인 규제를 한다면 일부 후보자들이 이런 낙선운동을 상대후보 비방에 암묵적으로 악용할 우려가 있으므로 선거의 공정성을 해칠 수 있다’고 그 기각 이유를 밝혔다.

실제로 총선 과정에서 ‘암묵적 악용’은 논란거리가 되고 시민단체의 정당성과 품위를 손상하는 한 원인이기도 했다. 시민단체 관련인사와의 ‘연고’를 살려 어떤 후보는 득을 보았다, 혹은 상대적으로 피해를 보았다는 소리가 들렸고, 일부지역에서는 사법적으로 문제화되기도 했다. 훌륭한 목적, 좋은 취지에서 비롯한 시민운동이라도 준법을 벗어나 탈법 방식으로 추진되면 결국 혼선과 자가당착에 빠진다는 경험을 안겨주었다.

헌재의 결정을 계기로 시민단체는 총선 때 ‘권력의 홍위병’ 소리를 들었던 일, 최근 언론 세무조사 사태를 둘러싸고 비슷한 비판을 듣는 데 대해 새삼 성찰의 필요가 있다. 요즘도 세무조사 결과는 법으로 공표될 수 없는 것인데도 시민단체는 언론개혁의 이름으로 ‘언론사 세무조사결과를 공개하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 역시 법을 무시하는 것이다. 공익을 내건 일이라도 적법 절차를 무시하면 또 다른 화를 부르고 공익조차 실현하기 어렵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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