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예술]천재작가의 삶의 흔적 '도스토예프스키,도시에…'

  • 입력 2001년 8월 31일 18시 27분


◇ '도스토예프스키, 도시에 가다'/ 이득재 지음/ 251쪽 9000원 문화과학사

레닌그라드(현 페테츠부르크)는 아라베스크 문양처럼 복잡하고 화려하다. 러시아 문학의 보고, 미래파 아방가르드 운동의 중심, 화창한 음악과 발레, 러시아 혁명의 난투장, 2차 대전 독일 패망의 징후, 절대군주의 욕망을 도시 조형의 논리로 삼은 곳.

그러므로 봉건제와 주변부 저개발근대성의 특성이 엉겹결에 겹쳐져 있는 어정쩡함 등이 그 문양이다. 거기에 하나 더! 우리는 도스토예프스키를 그 문양 속에 집어넣어야 비로소 레닌그라드의 내부를 온전히 만나게 된다.

그의 대표작 ‘죄와 벌’의 배경이 레닌그라드라서 만이 아니다. 우리가 좀더 섬세하게 감촉해야 할 대목은 도스토예프스키와 레닌그라드의 상동성이다. 상동성이라니?

도스토예프스키는 하나의 수수께끼이다. 그를 두고 위대한 작가라고 표현하는 것은 오히려 그에 대한 모욕이고 결례이다. 그는 ‘위대한 작가’라는 수사를 넘어선다. 고리끼 말대로 그는 사악한 천재이며, 혹은 병적이고 잔인하다 싶을 정도의 재능을 가진 광기의 존재이니 그렇지 않은가.

도스토예프스키의 이런 면모는 저개발 근대도시인 레닌그라드의 화려함 이면의 이미지와 다른 것이 아니다. 말류의 병, 사스러운 광휘, 어두운 역동성, 음험한 에너지 등의 살로 격자를 이루는 그 레닌그라드와 도스토예프스키는 서로를 비추는 반사경인 셈이다.

그렇다고 이 책이 도스토예프스키와 레닌그라드의 상관성을 기술한 책으로만 이해되어서는 곤란하다.

이 저서는 요컨대 양자의 관계를 디딤판으로 삼아 자연관, 도시성, 건축, 회화, 소설 등을 ‘시각체제’라는 그물로 나포해보려는, 우리 연구 경향에서 흔치 않은 시도의 소산이다. 도스토예프스키를 시각문화의 관점으로 재독하려는 저자의 의도는, 그러므로 당연히 근대적 분과체제로 분할, 고립되어 있는 영역의 옆구리를 트고 나가게 된다. 가로지르기니 횡단이니 하는 개념도 있건대, 말하자면 그런 것이 이 저작의 방법론이다.

책 제호대로 도스토예프스키가 도시에 가는 것은 심심 파적이 아니다. 도시는 그 자체로 근대의 소산들이 횡적으로 얽혀 있는 곳이다. 도스토예프스키라는 근대 이후 최고의 복잡한 사내가 도시라는 역시 인류 역사상 가장 복잡한 공간을 가로질러 간다는 사건. 그것은 곧 전통적인 근대적 학문체제나 연구 방법으로는 요령부득의 대상이 되기 십상이다. 해서 저자는 그 사내를 쫓아가면서 그의 횡단적 여행을 날카롭게 주시 평가하는 것이다.

그 주시와 평가의 응결인 이 저서는 자신의 존재방식을 바꾸어야 하는 이즈음 인문학의 운명에 하나의 건실한 고안책이 되고 있다.

이 성 욱(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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