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정부가 발표한 일류 상품 육성계획은 이런 점에서 단순한 수출지원정책 차원을 넘어 중장기적인 국가 브랜드 전략에 뿌리내리고 있다고 판단된다. 정부의 계획대로 2005년까지 500개의 일류상품이 한국의 이름을 걸고 세계시장을 주도한다면 세계인들은 일상에서 이들 상품을 접하면서 한국을 체험하고 일류 이미지를 체화하게 될 것이다.
세계 일류로 키워야 할 상품은 무엇일까. 그것은 선택과 집중의 문제이다. 기술주권이라는 정치역학에 비중을 두는 첨단기술 예찬론자들은 세계를 주도하는 첨단기술상품을 개발해내지 못하는 한 국제사회에서 국가의 계층 상승은 불가능하다는 논리를 편다. 반면 투자위험이 큰 첨단기술보다 적정기술, 즉 중간기술을 많이 확보하여 중·후진국의 맏형 노릇을 하는 것이 실리적이라는 중간기술 예찬론도 있다.
그러나 어떤 상품을 일류화할 것인지에 대한 논의에서 빠진 부분이 있다. 첨단기술이든 중간기술이든, 우리의 문화와 얼마나 연관성이 있느냐를 살피는 노력이다. 김치냉장고 딤채의 10년 경험은 이런 점에서 많은 것을 시사한다.
만도공조가 1991년 김치냉장고 개발에 착수해 1995년 양산을 시작하고 연간 100만대의 김치냉장고 시장을 열기까지 10년의 시간이 흘렀다. 국내 전체 가구의 20%가 김치냉장고를 보유하게 됐고, 이제 기존의 냉장고 시장을 추월하는 단계에 왔다. 이처럼 단기간에 시장을 키울 수 있었던 해답은 바로 문화와 기술의 접점에서 찾아야 한다.
서양기술이 만들어낸 냉장고는 서양의 음식문화, 즉 건조한 음식을 저장하는데 유용하지만, 숙성과 발효를 기본 메커니즘으로 하는 김치 등 한국음식은 감당하기 어려웠다. 김치냉장고는 여기에 착안해 겨울철 땅속 온도를 찾아 김장김치 맛을 과학적으로 재현해냈다. 그 과정에서 식품 종류별 최적온도에 대한 노하우가 쌓였고, 저장실 내의 온도 편차를 1도 이내로 유지하는 기술이 완성됐다. 저장실 내 온도 편차가 10도에 이르는 기존 냉장고와의 경쟁에서 주부들이 김치냉장고의 손을 들어준 것은 전통문화와 과학기술을 접목한 결과이다.
그렇다면 김치냉장고는 내수시장에서 우물안 개구리로 그칠 것인가. 만도공조는 올해 판매 목표 65만대 중 4만대를 수출할 계획이며, 수출 비중은 앞으로 가파른 상승곡선을 그릴 것이다. 교포사회에서 김치냉장고가 필수품으로 떠오르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김치를 비롯한 식혜 젓갈 장류 등 숙성 발효식품이 일본의 초밥(생선회)처럼 서양인들의 미각을 열어준다면 김치냉장고 시장은 더욱 커질 것이다.
전통문화에 기반해 그것을 기술로 구현한 상품은 탄탄한 내수시장을 창출하고 해외에서도 기술경쟁력을 확보해 글로벌 스탠더드로 자리잡을 수 있다. 정부의 지원이 없어도 강인한 자생력을 갖추게 된다. ‘기무치’에 맞서서 ‘김치’라는 이름 지키기로 끝나지 않고, 김치라는 문화에 뿌리내린 전후방 연계산업이 세계로 뻗어 나가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황한규(만도공조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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