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과연 북한에 대해서 얼마나 알고 있을까? 만주에서의 항일무장투쟁에 대한 연구는 북한 정권의 역사적 뿌리를 추적하는 작업이다. 주체사상으로 표현되는 북한의 극단적 민족주의와, ‘창업자’인 김일성에 이어 그 아들 김정일로 이어진 북한의 극단적인 개인숭배는 1930년대 만주의 산골에서 생활한 항일유격대들의 정서를 헤아리지 않고서는 도저히 설명할 수 없다.
이런 관심에서 출발한 나의 연구는 박사논문인 ‘상처받은 민족주의: 민생단 사건과 김일성’으로 이어졌다. 최소 500명의 항일혁명가들이 일제의 간첩이라는 억울한 누명을 쓰고 사라져 간 광기어린 민생단 숙청이 남긴 깊은 상처는 이 숙청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이 건설한 북한 사회에 지울 수 없는 흔적을 남겼다.
나는 박사논문을 수정하여 한국과 미국에서 출간하는 한편, 박사논문에서 미처 다루지 못한 1930년대 후반 이후의 김일성의 활동을 정리할 예정이다. 남쪽에서는 터무니없게 가짜로 그려지고, 북쪽에서는 엄청나게 부풀려져 그 실체가 왜곡된 김일성의 활동을 제대로 조명하는 작업은 남과 북의 화해와 통일을 위해 긴요한 일이라고 확신한다.
또 하나의 관심사인 민간인 학살은 김일성 연구보다 더 어려운 문제다. 한국전쟁 시기의 민간인 학살은 머리로 이해하기 힘들고 감정적으로 받아들이기에도 너무나 무거운 문제이다. 그렇다고 사료가 풍부한 것도 아니니 쉽게 연구성과를 낼 수 있는 주제가 아니다.
그러나 현대사의 거의 모든 사건이 학살의 영향을 벗어나지 못하니, 현대사 연구자로서 회피할래야 회피할 수 없는 주제가 민간인 학살이다.
서구의 학자들은 한국전쟁을 흔히 잊혀진 전쟁(Forgotten War)이라 부르는데, 잊혀진 전쟁 중에서 가장 철저히 잊혀진 부분이 민간인 학살이다. 민간인 학살에 대한 이해의 진전은 우리가 여태까지 알아 온 한국전쟁의 다른 모습을 보여줄 것이다. 구미 학계의 경우 홀로코스트나 제노사이드에 대한 연구가 활발하지만 우리 학계에서는 이제 시작이다.
민간인학살 자체만큼이나 끔찍스러운 일은 전국 방방곡곡에서 100만명 가량의 희생자가 발생한 이 학살에 대해 우리 사회가 모르는 척 하거나 정말로 모른 채 반세기를 보냈다는 점이다.
이런 자발적인 기억상실은 우리 사회 전체와 개개인의 심성에 어떤 영향을 미쳤을까? 빨갱이는 죽여도 좋은, 아니 죽여야 한다는 것이 가치기준이 된 사회에서 자란 젊은이 30만명이 군인으로 보내졌던 베트남의 정글에서는 어떤 일이 벌어졌던 것일까? 이런 문제로 골머리를 썩느라 내 연구노트는 어지럽기 짝이 없다.
한홍구(성공회대교수·한국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