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추경은 정부가 경기 부양을 위해 요청한 것으로 정쟁의 대상이나 당리의 도구가 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경제 회복을 위해 필요하다면 서둘러 그 정당성을 검토, 심의한 후 승인해 주고 정부는 이를 신속히 집행할 의무가 있다. 따라서 그동안 여야간 힘 겨루기에 밀려 국회 통과가 늦어진 것이 오히려 아쉬운 부분이기도 하다.
그러나 모든 예산의 국회 통과에는 소정의 절차가 요구되며 특히 이번 추경의 경우는 정책 실패를 호도하기 위한 예산이라는 지적 때문에라도 내용상 충분한 심의를 거쳤어야 했다. 그러나 여야는 추경을 임동원 통일부장관 해임건의안 처리와 묶어 3일 오전 심의를 하지 않고 그대로 통과시키는 야합 행위를 저질렀다.
이 과정에서 이한구 김홍신 심재철 의원(한나라당) 등이 이의를 제기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특히 이한구 의원의 경우 추경의 변칙 처리를 따지려는 본회의 발언이 묵살되기도 했다. 아무리 3당 총무간 합의라 하더라도 국민 생활과 밀접한 관계를 갖고 있는 예산을 정략적으로 처리한 것은 일의 우선 순위를 무시한 잘못된 선택이다.
전년도 세계잉여금을 재원으로 한 추경 편성은 관행이기 때문에 형식적 과정을 거쳤을 뿐이라고 주장할지 모른다. 그러나 전 해의 예산을 결산도 안한 채 세계잉여금을 사용하는 식의 잘못된 관행은 바로잡아야 한다. 국회법 84조에는 모든 예산을 상임위 심의 후 예결위를 거쳐 본회의에서 처리토록 하고 있는데 3일 본회의 표결이 열리고 있는 순간까지 3조5523억원에 달하는 지방교부금을 담당하는 행자위는 열리지조차 못한 상태였다. 자신들이 만든 법을 지키지 않는 국회의원들은 부끄러움조차 잊은 듯하다.
이런 식으로 추경이 남발되면 정부가 나라살림을 알뜰하게 할 이유가 없다. 어느 때고 필요하면 심의조차 거치지 않고 국회에서 예산을 받아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식의 추경이 항상 보장되어 있다면 본예산 심의는 무의미해진다. 이번에도 그랬지만 본예산에서 삭감된 부분이 버젓이 추경으로 승인되지 않았던가. 꼬박꼬박 세금을 내는 국민의 용납을 받을 수 없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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