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최화경/김치와 게놈지도

  • 입력 2001년 9월 6일 18시 31분


먹고살기 힘들었던 시절 김치는 우리에게 절반 양식이나 다름없었다. 멀건 콩나물국에 반찬이래야 김치 한 보시기뿐이었지만 불평 한마디 없이 밥 한 사발을 뚝딱 해치우곤 했으니까. 속을 털어낸 김치를 송송 썰어 넣고 부침개를 부치면 그 이상 가는 간식거리가 없었고 김치가 시어 꼬부라지면 두부를 넣고 찌개를 끓여 밥상에 올렸다. 잔얼음이 서걱서걱 씹히는 동치미 국물에 말아 먹던 국수는 겨울철 별미 중의 별미였다.

▷김치에 관한 기록은 삼국시대부터 보이지만 요즘과 비슷한 모양과 맛을 내기 시작한 것은 17세기 무렵인 것같다. 임진왜란을 전후해 고추가 우리나라로 건너왔고 그 한참 뒤에 고춧가루가 등장하기 때문이다. 이후 김치는 지방별로 재료와 양념 등을 달리 하며 무려 200여 가지로 나뉘면서 여러 맛이 뒤섞여 조화를 이루는 한국 음식의 전형으로 자리잡았다. 1984년 로스앤젤레스 올림픽 때만 해도 외국선수들이 처음 선수촌 메뉴에 오른 김치를 보고 신기해 했지만 이제는 웬만한 외국인이면 김치를 모르는 이가 없다.

▷이렇듯 ‘한국의 자존심’이나 다름없는 김치도 한때 속앓이를 해야 했다. 김치의 오묘한 입맛이 알려지자 일본이 재빠르게 겉절이와 비슷한 ‘기무치’를 앞세워 세계 시장에서 종주국 행세를 하고 나선 탓이다. 김치 종주국 싸움은 7월 국제식품규격위원회가 이름을 ‘김치(kimchi)’로 통일하고 ‘절임배추에 양념을 섞어 숙성한 발효식품’이라는 국제규격안을 통과시키면서 일단락되었지만 상한 자존심을 되찾기에는 무언가 부족했던 게 사실이다.

▷김치 유산균의 게놈지도 초안이 국내 연구진에 의해 처음 완성되었다고 한다. 김치에만 있는 토종 유산균인 ‘루코노스톡 김치아이’의 유전자 염기서열을 99% 이상 판독해냈다는 소식이다. 이에 따라 김치가 익은 다음 발효를 정지시켜 시어지지 않도록 할 수 있고 맛과 향을 조절하는 ‘맞춤 김치’도 담글 수 있으리라는 얘기다. 또 면역강화 항암작용 등 김치의 ‘숨은 효능’의 비밀도 풀릴 것이라고 한다. 오묘한 맛에 이어 그 비밀까지 가장 먼저 캐냈으니 이제야말로 김치 종주국의 자존심을 제대로 되찾은 느낌이다.

<최화경논설위원>bbchoi@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지금 뜨는 뉴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