粒-낱알 립 穀-곡식 곡 糧-양식 량 饒-넉넉할 요 奪-빼앗을 탈 剩-남을 잉
‘米’는 곡식이 여문 모습에서 나온 글자로 본 뜻은 ‘곡식의 열매’ 또는 ‘이삭’이다. 그러므로 쌀 외에 조 수수 보리 밀 등도 모두 米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粉(분)이라면 낟알 곡식을 빻은(分) 것으로 굳이 쌀가루만을 뜻하지는 않는다. 가루로는 쌀보다 오히려 밀이나 콩이 더 많이 사용되고 있지 않은가. 또 粒(립)은 모든 낟알을 뜻하는 것으로 쌀알만 해당되는 것은 아니다. 쌀알이라고 구별할 때에는 오히려 米粒(미립)이라고 한다. 이는 粗(거칠 조) 粹(순수할 수) 精(가릴 정) 粘(붙을 점) 糊(풀 호) 糧(양식 량) 등이 모두 그렇다.
실제로 중국 사람들은 좁쌀을 小米(소미), 쌀을 稻米(도미 또는 白米), 옥수수를 玉米(옥미)라고 부른다. 후에 米가 ‘쌀’만 뜻하게 된 것은 쌀이 五穀(오곡)의 으뜸으로 가장 중요한 곡식이었기 때문이다. 이 때부터 다른 곡식들도 제각각 이름을 갖게 되었다.
쌀은 보리(麥·맥), 수수(黍·서), 조(粟·속), 콩(菽·숙)과 함께 五穀으로 일컬어져 왔으며 특히 우리 민족은 쌀을 주식으로 삼았던 만큼 五穀의 으뜸으로 일찍부터 쌀을 중시했다. 그러다 보니 쌀에 대한 애착과 생각은 가히 종교라고 해도 좋을 정도였다. 이 때문에 적어도 우리나라에서 쌀은 먹는 糧食(양식)의 기능뿐만 아니라 생활 전반에 걸쳐 매우 중요한 상징성을 갖고 있다.
아주 옛날부터 쌀은 화폐의 기능을 하였으며 불과 몇십년 전까지만 해도 시골에서는 쌀을 결제수단으로 사용하곤 했다.
쌀은 또한 豊饒(풍요)를 상징하기도 하여 ‘이밥에 고깃국’을 배불리 먹는 것은 우리 조상 누구나 그리던 꿈이었다. 또 精誠(정성)의 상징이기도 하여 제사상에 祭物(제물)로 올려졌으며 심청이가 아버지의 눈을 뜨게 하기 위해 불전에 바친 것은 공양미 300석이었다. 그뿐만 아니다. 일제 때는 收奪(수탈)의 상징이 되어 민족의 한을 대표하기도 했다.
이처럼 우리 민족과 떼려야 뗄 수 없는 밀접한 관계를 갖고 있는 쌀이건만 영농기술과 품종 비료 농약 등 모든 면에서 貧弱(빈약)했으므로 늘 부족했다. 그래서 쌀밥은 추수 후 며칠이 고작이었으며 온갖 나물밥을 먹어도 그놈의 보릿고개는 얄미우리만치 빠지지 않고 찾아오곤 했다.
그러나 열심히 노력한 결과 이제 쌀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되겠다 싶었는데 언제부터인가 過剩(과잉)생산으로 부담스러운 존재로 전락하고 말았다. 격세지감을 느낀다.
鄭 錫 元(한양대 안산캠퍼스 교수·중국문화) sw478@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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