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같은 내용은 국내 원전을 세우고 관리하는 한국수력원자력(올 4월 한국전력에서 독립한 자회사·대표 최양우)이 최근 한나라당 과학기술정보통신위 김영춘(金榮春) 의원에게 제출한 ‘월성 원자력 발전소 지질조사 검토 보고서’(77년 9월 작성)에 들어있는 것이다.
9일 이 보고서에 따르면 당시 월성 원전 1호기 부지의 지질을 조사한 미국 다폴로니아사측은 ‘원전이 세워질 한 지점(일명 ‘트렌치-5a’·원자로에서 700여m 떨어져 있으며 현재는 송전탑이 세워져 있는 곳)에서 활성단층으로 판단되는 단층이 발견됐다’고 밝혔다.
▽보고서 내용〓한국전력은 76년 미국의 지질조사 전문회사 다폴로니아와 캐나다의 원전 설계 및 설비 전문회사 캐나톰사에 1호 원전이 들어설 월성 부지에 대한 조사를 맡겼다.
당시 다폴로니아측은 ‘활성단층일 확률이 매우 높기 때문에 충분한 조사가 이뤄진 다음 원전을 세워야 한다”고 한 반면 캐나톰측은 “풍화와 침식에 의해 지층이 내려앉은 ‘차별다짐현상(differential settlement)’으로 지진의 위험은 없다”고 상반된 결과를 내놓았다.
이듬해 9월 최종 검토보고서를 낸 자원개발연구소측은 대체적으로 캐나톰측의 의견에 동의하면서도 다폴로니아의 의견에 대해 ‘세심하고 충분한 조사가 실시되어야 한다’는 견해를 밝혔다. 하지만 그 후 재조사는 이뤄지지 않았고 한전은 78년 2월 공사를 시작해 83년 완공했다.
국내 지질학자들은 “다폴로니아는 월성 1호기 외에도 고리 2, 3, 4호기와 영광 1, 2호기, 울진 1, 2호기 등의 지질 조사를 맡았던 원전부지조사 전문회사”라며 “그런데도 당시 정부가 왜 캐나톰의 의견만을 받아들였는지 명확치 않다”고 의문을 제기했다.
고려대 지구환경과학과 이진한(李晋漢) 교수는 “캐나톰측 주장은 이론적으로 논쟁거리가 많다”며 “캐나톰 주장대로 차별다짐현상이 일어나면 지층에 생기는 단층선이 거의 수직방향을 이루거나 침하된 부분이 내려가는 ‘정단층’ 현상이 있어야 하는데 이 지점은 오히려 역단층”이라고 지적했다.
▽국내 관계자들 증언〓당시 보고서를 검토했던 자원개발연구소의 한 연구원은 “당시 지질학계의 수준으로는 활성단층인지 비활성단층인지를 구별할 능력이 없었다”고 고백하고 “워낙 주어진 시간이 짧아 서둘러 부지를 조사했고 미심쩍은 부분이 있었지만 원전 1호기를 짓는다는 명분에 밀려 서두른 감이 있었다”고 전했다.
그러나 또 다른 연구원은 “상세한 부지조사는 안했지만 두 회사의 상반된 의견을 충분히 검토했고 캐나톰측 의견이 맞다는 쪽으로 결론이 난 것”이라고 말했다. 한전측 관계자는 “당시 전문가들이 리히터 규모 6.5의 지진도 견딜 수 있도록 내진 설계를 충분히 했기 때문에 문제가 없다”고 주장했다.
김영춘 의원은 “당시 다폴로니아는 20여일 동안 1호기가 들어설 부지 몇 군데를 굴착기로 찍어 단층조사를 벌였으며 그 중 한 곳이 활성단층일지 모른다는 지적을 한 것”이라며 “문제의 지점을 더 파서 단층의 길이가 어느 정도 되는지 정밀 조사를 벌여야 했으나 그러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김 의원은 “우리의 경우 원전 가동이 20여년이 돼 가지만 안전과 직결되는 활성단층에 대한 확인노력을 하기 시작한 것은 불과 몇 년밖에 안 된다”며 “객관적인 조사가 이뤄질 수 있도록 전문가집단을 구성해 시급히 재조사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활성단층:대규모 지진 주원인
미국 원자력위원회는 활성단층을 “과거 3만5000년 이내에 한번 이상 움직임이 있었거나 과거 50만년 이내에 두 번 이상의 움직임이 있었던 단층”으로 정의하고 있다. 이런 활성단층이 원전을 중심으로 반경 8㎞ 이내 300m, 32㎞ 이내에 1.6㎞ 이상 길이로 존재할 경우 원전 건설을 재고하거나 철저한 지질조사를 통해 지진에 대한 완벽한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활성단층은 최근의 대만 및 터키지진, 일본 고베지진 등 대규모 지진의 주요원인으로 지적되고 있다. 기상청에 따르면 1981년부터 지금까지 월성 인근 50㎞ 이내에서 리히터 규모 2.2(미진) 이상 4.2(중진) 이하 지진이 모두 20차례 발생한 것으로 보고됐다.
<민동용·현기득기자>mind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