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는 고이즈미 고타로씨가 기자 회견을 하는 현장입니다.”
세상에! 뉴스를 중단하고 생중계한다는 게 고작 고이즈미 고타로(小泉孝太郞·23)의 기자회견이라니. 그것도 화급을 다투는 ‘사건’이 아니라 TV광고 모델 선정 발표 회견을…. 아무리 고이즈미 고타로가 일본 총리인 고이즈미 준이치로의 장남이라고 해도 그의 연예 활동에 관한 회견을 생중계한다는 점이 선뜻 납득되지 않았다.
그러나 고타로에 대한 일본 방송사의 과열 경쟁은 그 때부터 시작이었다. 그 날 밤 내내 채널마다 그의 얼굴이 비쳐졌고, 일주일 동안 이 같은 소동은 공영 방송인 NHK-TV를 제외하고 모든 방송사에서 빚어졌다.
고이즈미 고타로는 게이오대 4학년에 재학 중으로 최근 신인으로서는 파격적인 1억 엔의 전속금을 받고 연예 전문 프로덕션과 계약했다.
후지 TV가 생중계한 기자회견은 그가 음료회사 산토리의 신제품인 다이어트용 생맥주의 광고 모델로 데뷔한다는 것이었다. TV카메라 25대, 200여 명의 보도진이 몰린 가운데 등장한 고타로는 산토리의 역대 모델들이 모두 거물급 스타들이었기 때문에 자신이 선택될 줄 몰랐다고 털어놓았다.
그 자리에 모인 일본 기자들도 꼴불견이었다. 최근 본격적인 연예 활동을 위해 한 달 전 요코스카 본가로부터 독립한 그에게 “혼자 사는 생활에 익숙해졌느냐” “어느 여자하고 마시고 싶으냐” “총리인 아버지는 뭐라고 했느냐” 등 질문다운 질문보다 신변 잡기적인 내용을 물어댔다. 거기에다 아부하는 말과 표정도 역력했다.
한 마디로 고타로는 데뷔한 지 한 달 남짓한 신인 중의 신인이다. 노래든 연기든 검증된 것이 하나도 없다. 확실한 사실은 아버지가 일본 총리이라는 점뿐.
그런데도 일본 매스컴은 그를 톱스타로 대우하고 있다. 심지어 출연작품 하나 없는데도 “대형 연기자가 될 것이다” “톱스타 감이다”라고 추켜 세워주는가 하면 유명 인사들이 줄줄이 TV에서 “예의도 바르고 얼굴도 잘 생겨 대표적 연기자가 될 것이다”라고 극찬하고 있다.
또한 이를 기자들로부터 전해 듣고 흐뭇해하며 흐흐 대는 고이즈미 총리의 모습도 보였다. ‘쇼 맨쉽 강한 선동적인 정치가’ ‘탤런트 정치가’라는 비판을 듣고 있는 그도 아무 곳에서나 손을 번쩍번쩍 들어 보이는 등 프로 연예인 못지 않은 ‘인기 제스처’를 보여주고 있다.
한편 지난 일주일 동안 가장 많이 나온 방송 10대 뉴스에는 44명의 인명을 앗아간 신주쿠의 화재 참사에 이어 고타로에 대한 기사가 2위를 차지했다.
유재순<재일 르포작가>yjaesoon@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