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부 E&B클럽]"용돈일기 쓰게 해야"

  • 입력 2001년 9월 13일 18시 21분


왼쪽부터 이지영 추은영 최정숙 손미선 김유진씨
왼쪽부터 이지영 추은영 최정숙 손미선 김유진씨
《‘동아일보 주부 E&B(Education & Breeding) 클럽’네 번째 좌담이 ‘용돈’을 주제로 지난 11일 동아일보사 14층 회의실에서 열렸다.

김유진, 손미선, 이지영, 최정숙, 추은영씨(가나다 순)가 참석했다.

아직 아이가 어려 별로 할 말이 없을 것 같았던 주부들도 “평소 생각한 게 많다”며 적극적으로 나섰다.

‘언제부터 용돈을 주는 것이 좋은가’로 시작한 얘기는 자연스럽게 ‘경제관념 심어주기’로 이어졌고 다시 ‘어른들이 모범을 보여야 한다’, ‘소비문화가 선진화돼야 한다’ 등으로 발전했다.》

▽이지영〓먼저 용돈의 개념부터 명확히 해야 혼란스럽지 않을 것 같아요. 학자들은 “책 사는데 써라”, “이걸로 옷 사입어라”하며 용도를 정해 주는 돈은 용돈으로 보지 않는대요. 아이가 스스로 판단해서 독자적으로 쓸 수 있는 돈이 바로 용돈이라는 거죠.

▽다들(고개를 끄덕이며)〓그럴 듯 하네요.

▽김유진〓아직 딸아이가 어려서 코앞에 닥친 일은 아니지만 얼마나 주는 게 좋은 지 궁금해요.

▽손미선〓초등학교 다니는 아들에게 1주일에 500원씩 주고 있어요. “모자라면 더 주겠다”고 해도 또래 친구들도 다 그만큼 받는다고 더 달라고 하지도 않아요. 그 돈으로 주로 친구들 생일선물을 사는데, 부족하지 않은가봐요.

▽이〓그 동네 아이들 참 건전하네요. 요즘은 2만∼3만원 하는 선물에도 감동하지 않는 꼬마들도 많다는데…. 초등학생 용돈규모는 1주일에 500∼2000원이 적당하다고 생각해요. 더 어린 유치원생은 주급보다 2∼3일에 한 번씩이 좋구요.

▽손〓아이와 상의해서 결정해야 겠지요. “얼마 이상은 안돼”라고 못박아서는 안될 것 같아요. 얘기하다 보면 어른들은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용도가 튀어나와요. 용돈 때문에 아이를 더 잘 이해할 수 있다면 일석이조 아니겠어요? 근데 용돈은 언제부터 주는 게 좋을까요?

▽추은영〓우선 아이가 경제관념을 갖고 있어야겠죠. 한 번은 아이가 장난감 사달라고 조르기에 일부러 1000원짜리 한 장 달랑 들려 가게에 보냈어요. 돈에 대한 개념을 심어주고 싶었지요. 갖고 싶은 걸 잔뜩 골라놓고 1000원을 냈으니 어땠겠어요? 당황했겠지만 그 때부터 돈이 뭔지 조금은 알더라구요.

▽최정숙〓전 아들, 딸이 유치원다닐 때 설거지를 하거나 현관바닥의 신발을 똑바로 정리하거나 할 때만 용돈을 주곤 했어요.

▽추〓그렇게 훈련을 시켜야 ‘돈은 소중한 것이다, 따라서 잘 관리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되죠. 캐릭터가 탐나 포케몬, 디지몬빵을 사서 캐릭터만 모으고 빵은 버리는 아이들도 있대요. 용돈일기를 쓰게 하고 노력하는 모습이 보일 때 용돈을 주는 게 좋겠어요.

▽최〓(핸드백에서 반으로 자른 공책을 꺼내며) 얼마 전 집청소를 하다 대학 다니는 딸아이가 중학교때 쓰던 ‘용돈기입장’을 찾아서 갖고 왔어요. 보세요. 떡볶이 200원, 어묵 100원…. 너무 재밌지 않아요?

▽김〓어머, 여기는 ‘엄마에게 1000원 꿔줌’이라고 돼있네요. 갚으셨어요? (다들 한바탕 웃음)

▽이〓용돈일기를 쓰면서 용돈을 어디에 쓸 지 우선순위를 스스로 정할 수 있도록 가르치는 것도 필요해요. 모으는 것도 중요하지만 잘 쓰는 건 더 중요하니까요.

▽손〓저도 학교다닐 때 썼는데 엄마 가계부 쓰시는 흉내를 내면서 재미있게 적어나갔던 기억이 나요. 하지만 용돈일기를 쓰게 하더라도 일단 용돈을 준 다음엔 지나치게 참견하면 역효과를 낼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그렇게 낭비하면 다신 용돈 안준다”고 야단치면 상처를 받을 수도 있고, 스스로 돈관리하는 능력도 약해지죠.

▽이〓학교에서 여는 ‘아나바다(아껴쓰고, 나눠쓰고, 바꿔쓰고, 다시쓰고) 장터’도 아이들 경제교육에 많은 도움이 될 것 같아요.

▽손〓아이가 처음 아나바다 장터에 갔을 때 일이에요. 2000원을 주고 마음대로 쓰라고 했더니 쓸모없는 옷들을 잔뜩 사들고 왔어요. 은근히 화가 났는데 찬찬히 봤더니 나름대로 돈을 쪼개 엄마옷, 아빠옷, 자기가 쓸 물건들을 골고루 샀더라구요. 뿌듯했죠.

▽추〓그게 바로 ‘돈 잘 쓰는 법’을 자연스럽게 배워가는 게 아닐까요? 엄마들이 아이 기 죽이지 않겠다고 용돈 펑펑 주는 건 정말 이해할 수 없어요.

▽최〓집을 자주 비우는 부모가 보상심리 때문인지 용돈을 많이 준대요. 생활환경이 어려웠던 엄마들도 자신의 열등감을 보상받기 위해 또 용돈을 퍼주고요.

▽이〓용돈 액수를 딱 정해놓지 않고 ‘규칙’을 만들어 철저하게 지키는 분을 알고 있어요. 예를 들자면 휴대전화 통신비가 2만원이 될 때까지는 엄마가 내주고, 2만원을 넘는 부분은 아이가 내도록 하는 거에요. 옷도 2만원짜리면 5000원만 보태주고 말이죠. 이런 방법도 괜찮은 것 같아요.

▽추〓부모가 뭐든지 해결해주려는 게 문제에요. 우리는 아이가 고등학교를 졸업하는 순간 모든 지원을 끊겠다고 지금부터 일러주고 있어요.

▽김〓너무 안줘도 문제 아니에요? 베풀 줄 모르고 받기만 하는 구두쇠가 되면 어떻게 해요. 경제관념 길러주려다 성격 버리겠어요.

▽손〓아이들도 돈이 필요할 때가 있어요. 특히 사춘기 때는 누구나 유명 브랜드를 찾는 ‘메이커 병’에 걸리는 게 보통이잖아요. 그럴 때 자칫하면 쉽게 돈을 벌려고 나쁜 짓을 하는 애들도 생기죠.

▽추〓욕망을 억제하는 법을 가르치지 않아서 그런 거 아닐까요. 중고등학교 가면 욕망을 주체하지 못하죠. 어릴 적부터 제대로 돈 쓰는 버릇을 들여야 늦지 않아요.

▽손〓아이들만의 또다른 문화를 이해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최〓이렇게 생각하면 어떨까요? 문화가 성숙하지 않아서 우리 사회에서 문제되는 것들이 선진국에선 아무런 문제가 안되는 것들이 많잖아요. 옷만 해도 그래요. 어른들의 상혼이 아이를 망가뜨리는 측면도 있어요. 어른들부터 바뀌어야 해요.

▽모두들〓동감이에요.

▽김〓미국에서 공부할 때 캠퍼스에서 번지르르하게 차려입은 학생들 중 상당수는 우리나라 유학생들이었어요. 현지 학생들은 실속을 따지죠. 정장에 운동화를 신는 경우도 많아요. 저도 옷을 편하게 입는 편인데 여기선 어른들한테 “옷이 그게 뭐냐”고 야단맞기도 해요.

▽손〓캐나다에 사는 조카가 방학때 한국에 들어와 예쁜 캐릭터 학용품이며, ‘항공모항 신발’ 등을 사가지고 가면 스타가 된대요. 검소하게 사는 캐나다 애들이 그런 걸 보기나 했겠어요?

▽추〓베스트셀러 ‘부자 아빠, 가난한 아빠’를 보면 가난한 아빠가 사치품을 산대요.

▽최〓결국 부모가 솔선수범해 모범을 보이는 게 더 중요하다는 거 아니겠어요?

▽김〓저도 지금부터라도 가계부를 써 볼까요? 아이가 본받게.

▽추〓부모가 낭비하면서 아이에게 아끼라고 강요하는 것은 말이 안되지만, ‘엄마는 못입고 못먹어도 내 아이는 다 해준다’는 것도 말이 안돼요. 그렇다고 아이가 고마워 할 것 같아요?

▽이〓초등학교 들어가면 읽어볼 만한 좋은 경제동화책도 요즘 많이 나왔어요. ‘12살에 부자가 된 키라’(을파소), ‘피노키오의 몸값은 얼마일까요’(아이세상), ‘가난한 나라의 가난한 아이, 부자나라의 부자아이’(아이세상), ‘펠릭스는 돈을 사랑해’(비룡소)가 괜찮다고 하더라구요.

▽손〓한 가지 여쭤보고 싶은 게 있어요. 가끔 아이 할아버지, 할머니께서 용돈을 주시는데 ‘용돈교육’에 차질이 생기거든요. 차라리 안주시는 게 좋겠다는 생각도 해봐요.

▽이〓주시면 좋지 뭘…. 목돈 들어가는 물건을 사주면 어때요?

▽김〓전 아이가 보는 앞에서 저축을 해줘요.

<정리〓정경준·김현진기자>news9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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