太初에 우주는 거대한 계란처럼 생긴 億劫(억겁)의 암흑 덩어리였다. 중국사람들은 그것을 混沌(혼돈)이라고 했다. 그 암흑 속에서 수만년 동안이나 깊은 잠에 빠져 있던 盤古(반고)라는 神이 깨어나 도끼를 내리치자 엄청난 轟音(굉음)과 함께 계란이 갈라지면서 가볍고 맑은 기운은 위로 올라가 하늘이 되었고, 무겁고 탁한 기운은 가라앉아 땅이 되었다.
그 뒤 다시 붙게 될까 두려워한 盤古가 마치 역도를 하듯이 버티고 서 있기를 1만8000년, 키가 하루에 한 길씩 자랐으므로 현재 하늘과 땅은 9만리나 떨어지게 되었다고 한다. 중국의 古代神話에 나오는 盤古의 天地開闢(천지개벽)이다.
사람은 태어나 죽을 때까지 머리로 하늘을 이고 발로 땅을 딛으며 산다. 여기에다 하늘은 日月이 運行하는 바탕이요 風雨가 造化하는 근원이며, 땅은 萬物을 生育하는 母胎(모태)가 아닌가. 더구나 농경민족이었던 만큼 하늘과 땅의 攝理(섭리)에 누구보다도 민감해야 했으니 중국이나 우리 조상들은 일찍부터 天地에 대해 독특한 인식을 가지게 되었다.
그 결과 하늘은 최고의 主宰者(주재자)로 만물의 으뜸이며 生生不已(생생불이·끊임없음) 運轉(운전)하는 德을 지니고 있다고 여겨 그야말로 ‘하늘같이’ 섬겼으며, 땅은 萬物을 아우르며 滋養(자양)하는 德을 가지고 있다 하여 어머니처럼 여겼다. 후에는 그것으로도 부족하여 人格을 부여함으로써 인간과 똑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다고 여기게 된다.
‘하늘이 내려다 보고 있다!’ ‘하늘이 무섭지 않느냐?’ ‘하늘이 알고 땅이 안다’ 등이다.
한자말도 많다. ‘天經地義(천경지의)’라면 ‘하늘과 땅의 섭리’로서 ‘영구불변의 철칙’이라는 뜻이며 ‘天崩地裂(천붕지열)’은 天地가 무너져 내린 것과 같은 엄청난 재앙을 뜻한다. 그 뿐인가. 驚天動地(경천동지)는 ‘하늘과 땅이 뒤흔들릴 듯 몹시 놀라운 일’, 天地가 내리는 형벌을 ‘天誅地滅(천주지멸)’이라고 한다. 極刑(극형)인 셈이다.
그러나 天地가 무서운 존재만은 아니다. 五感을 가지고 있는 만큼 喜怒哀樂(희로애락)을 표현할 줄 알며 人間과 交感도 가능하다. 그래서 ‘歡天喜地(환천희지)’라면 ‘하늘과 땅이 함께 신이나 흥겨워 하는 것’을 말하며, 天人共怒라면 ‘하늘과 사람이 함께 분노하는 것’으로 도저히 용서할 수 없음을 뜻한다. 이번 미국에서 발생한 테러, 驚天動地에 天人共怒할 蠻行(만행)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鄭 錫 元(한양대 안산캠퍼스 교수·중국문화) sw478@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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