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영훈의 섬과 사람들] 울릉도

  • 입력 2001년 9월 14일 14시 28분


◇ 그리움으로 솟아난 ‘동해의 비경’

울릉도는 참으로 묘한 매력을 가진 섬이다. 그곳에 머무르는 동안에는 “예까지 와서 뭘 보겠다고 이 고생을 하나” 하는 마음이 불쑥불쑥 치밀곤 한다. 그러다가도 막상 그곳을 떠나온 뒤엔 마치 열병(熱病) 같은 그리움이 시시때때로 밀려든다. 그와 함께 울릉도 여행에서의 고생스러운 일들마저도 오래도록 잊지 못할 추억으로 다가온다.

울릉도 여행은 이번이 세 번째다. 두 번의 여행으로 울릉도의 가볼 만한 데는 거의 다 둘러볼 수 있었다. 그런데도 뭍으로 돌아온 뒤에는 늘 뭔가를 흘리고 온 듯한 느낌이 남곤 했다. 첫번째 여행에서는 주로 대중교통을 이용한 탓에 아예 발조차 내딛지 못한 데가 적지 않았다. 단체로 움직인 두 번째 여행에서는 교통문제가 수월하게 해결된 반면, 단체 일정이 빠듯한 탓에 개인적으로 꼭 둘러보거나 오래 머무르고 싶은 데가 있어도 그냥 지나칠 수밖에 없었다. 이번에는 그런 아쉬움을 남기지 않겠다고 작심하고 도동항에 닿자마자 렌터카에 올랐다.

도동에서 사동으로 넘어가는 오르막길은 몇 개의 다리가 놓인 나선형 도로다. 산비탈의 경사가 몹시 가파른 탓이다.

그래도 고갯마루에 올라서면 산과 바다와 마을이 아름답게 어우러진 사동 일대 풍경이 장쾌하게 조망된다. 흑비둘기서식지가 있다는 사동마을을 지나고, 남쪽으로 뾰족하게 튀어나온 가두봉 아래를 돌아서면 통구미 마을이 지척이다.

전형적 어촌인 통구미에서는 아주 독특한 풍경을 만날 수 있다. 마을 주변에는 칼로 자른 듯한 암벽이 성처럼 둘러쳐 있고, 마을 앞에는 경사 급한 몽돌해변이 드리워 있다. 바로 이 몽돌해변이 마을의 포구인 셈인데, 특이하게도 모든 배들은 뭍에 올라와 있다.

◇ 눈길 닿는 곳 그림 같은 풍광 … 삶의 강인함도 물씬

마침 작은 어선 한 척이 고기잡이를 마치고 포구로 들어왔다. 해변에서 기다리던 아주머니는 배가 해변에 닿자마자 주변에 있던 굵은 통나무를 끌어다가 배 밑에 일정한 간격으로 깔았다. 그리고 배 위의 늙수그레한 어부는 뭍에 고정시킨 밧줄을 배 엔진과 연결한 회전축에 감아 배를 뭍으로 끌어올렸다. 밧줄을 감는 어부도, 통나무를 옮기는 그의 부인도 따가운 햇살 아래 연신 비지땀을 훔쳤다.

그 배의 선주이자 유일한 선원인 어부에게 “바로 옆의 콘크리트 선착장을 마다하고 배를 굳이 뭍으로 끌어올리는 까닭이 뭐냐”고 물었다. “파도가 높고 폭풍이 자주 몰아치기 때문에 이렇게 올려놓지 않으면 배가 자주 망가진다”는 게 그이의 대답이다. 이들 부부의 억척스런 모습을 지켜보고 있으니 문뜩 “명이나물(산마늘)과 깍새(슴새)로 연명하며 척박한 자연환경을 이겨낸 울릉도 개척자들의 후손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울릉도 사람의 남다른 생활력은 여러 곳에서 실감할 수 있었다. 나팔등도 그런 마을 중 하나다. 서면 소재지인 남양리에서 좁은 골짜기 안으로 들어가면 도무지 사람이 살 것 같지 않은 첩첩산중까지 차 한 대만 간신히 지날 만한 길이 이어진다. 그 길이 끝날 즈음에 들어앉은 마을이 바로 나팔등이다. 가파르게 흘러 내린 산자락에 민가 몇 채가 띄엄띄엄 들어서 있고, 민가 주변의 드넓은 산비탈에는 잘 가꾼 약초밭과 산나물밭이 펼쳐져 있다. 요즘은 육지 평야지대의 문전옥답(門前沃畓)조차도 묵히는 실정인데, 이곳에서는 묵히는 밭을 찾아보기 어렵다. 서 있기도 힘겨우리만큼 비탈진 산중턱을 개간하여 지금까지도 약초와 산나물을 재배하는 이 마을 사람의 개척정신이 그저 경이로울 따름이다.

이맘때쯤이면 서면 남양리와 태하리, 북면 천부리 등 큰 갯마을에서는 오징어 말리는 작업이 한창이다. 파도소리 상쾌한 어느 몽돌해변에서 오징어를 널고 뒤집고 거두는 일은 어민에게 중요한 생업임과 동시에 관광객에게는 울릉도의 여정(旅情)을 돋우는 풍경이다. 하지만 올해는 오징어 어획량이 예년만 못해 바닷가에 설치한 오징어 덕장의 풍경도 좀 썰렁한 편이다.

남양리와 태하리는 같은 서면에 속해 있어도 서로 오가는 길이 만만치 않다. 몹시 좁고 가파르고 구불거리는 산길인 태하령 고갯길을 넘어야 하기 때문이다. 길이 어찌나 험한지 운전경험이 많은 사람도 이 고개를 넘을 때면 식은땀이 절로 흐른다. 설상가상으로 고갯길 중간에서 반대방향의 차와 마주치면 곡예하듯 위태롭게 비켜줘야 한다. 찻길 옆에는 육지에서 보기 어려운 솔송나무 섬잣나무 너도밤나무 군락지가 형성되어 있지만, 거기에는 미처 눈 돌릴 겨를도 없다. 울릉도 유일의 렌터카 회사가 육지 관광객에게는 현지인 기사를 붙이는 조건으로 차를 빌려주는 것도 바로 이 고개 때문이다. 하지만 서면 구암과 학포 사이의 일주도로 구간이 완공되는 올 9월26일부터는 이 고갯길을 지나지 않고서도 태하리로 넘어갈 수 있게 된다고 한다.

< 양영훈/ 여행칼럼니스트 > www.travelmaker.co.kr

◇ Tips

흑비둘기서식지

사동 새각단마을의 도로변에는 몇 그루의 아름드리 해송과 후박나무가 들어선 쉼터가 있는데, 이곳이 바로 흑비둘기서식지다.비둘기과에 속하는 흑비둘기는 우리 나라 해안지방의 후박나무숲에만 사는 희귀한 텃새로 종 자체가 천연기념물 제215호 지정되어 있다. 사동의 서식지도 천연기념물 제237호로 지정되었으나, 실제로 가보면 주변환경에 매우 민감한 흑비둘기가 여태껏 살고 있을 것 같지는 않다. 차량 통행이 많은 해안일주도로가 지척인데다 바로 옆에는 민가들이 에워싸듯 들어섰기 때문이다. 오히려 뜻하지 않게 흑비둘기를 본 곳은 남양리였다. 남양초등학교 뒤편 후박나무숲에 서식하는 것으로 보이는 흑비둘기 한 쌍이 반대편 숲으로 날아가는 광경을 우연히 목격한 것이다.

◇ 지역정보

▷숙식

·울릉도의 숙박시설은 여름철 성수기만 아니면 대체로 넉넉한 편이다. 도동에는 장급여관 수준의 호텔과 장급여관이 몰려 있고, 저동에는 장급여관이 여럿 있다. 그 이외의 지역에서는 추산의 추산일가(054-791-7788), 통구미의 울릉리조텔(791-7744), 남양의 남양장(791-7722), 태하의 동백장(791-5339) 등이 권할 만한 숙박업소다. 그 중 송곳산 아래 해안절벽에 자리잡은 추산일가는 바다 조망이 아주 빼어난데다 객실 화장실 식당 등도 이용하기에 편리하고 깔끔하다. 그리고 울릉리조텔 남양장 동백장은 바다와 가까워 운치가 그만이다. 그밖에 천부에는 여관이 몇 있고, 나리분지에도 민박집이 많다. 농토가 좁고 산물도 넉넉하지 못한 울릉도는 음식문화가 크게 발달하진 못했으나 묵나물해장국 홍합밥 약소불고기 등은 이곳 아니면 맛보기 어려운 별미다. 도동의 99식당(791-2287)은 소뼈를 우린 육수에 묵나물(엉겅퀴) 콩나물 토란 파 등의 약채를 넣고 끓인 묵나물해장국의 원조집으로 소문난 집이다. 그리고 홍합밥은 도동의 보배식당(791-2683), 약소불고기는 저동의 경주식당(791-2287)이 잘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밖에 산채비빔밥 산채정식 감자전 등을 내놓는 추산일가와 나리동의 산마을식당(791-4643)도 울릉도의 맛집 중 하나로 손꼽힌다.

▷교통

·여객선·포항→울릉도: 포항여객선터미널(054-242-5111)에서 대아고속(02-514-6766)의 대형 쾌속선 썬플라워호가 매일 10시에 출항하며, 도동항까지는 약 3시간이 걸린다. 요금은 4만9000원(1등), 5만4000원(우등). ·동해→울릉: 9월8일부터 신규 취항한 한겨레호가 묵호항여객선터미널(033-531-5891)에서 하루 1회(10:30) 출항하는데, 화요일과 수요일에는 기존의 카타마란호로 교체 운항한다. 소요시간은 2시간 10분(한겨레호), 3시간(카타마란호). 요금은 3만4천 원(카타마란호), 4만2천 원(한겨레호).

·섬 내 교통편·군내버스: 도동→저동(30분 간격), 도동→통구미→남양→구암(약 1시간 40분 간격) 구간은 수시로 운행한다. 그러나 섬목→현포→태하 구간은 저동항↔섬목 간 도선의 발착 시간에 맞춰 운행한다. ·택시: 개인택시(791-2612)와 울릉택시(791-2315) 소속의 일반택시를 합쳐 모두 40대 가량이 운행하는데 대부분 갤로퍼 같은 지프형이다. 요금은 미터제가 아니라 구간별로 정해져 있다. ·렌터카: 지난 98년 봄부터 영업을 시작한 삼지렌터카(791-2240)밖에 없다. 주로 6인승 갤로퍼와 12인승 승합차를 대여하며, 혼자거나 일행이 많지 않으면 1인 요금을 내고 기사 딸린 렌터카에 합승도 가능하다. ·해상일주유람선: 울릉도유람선협회(791-4468) 소속의 유람선이 하루 2회(9:00 16:00, 8월16일~10월 14일) 운항한다. 소요시간은 약 3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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