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포럼]김경동/통합의 리더십 급하다

  • 입력 2001년 9월 20일 18시 16분


최근 남북관계를 둘러싼 갈등은 마침내 정치권의 분열로 이어졌고 우리 사회 전반에 걸쳐 심각한 혼란을 야기하였다. 그동안 잠복해 있던 우리 사회의 분열과 갈등의 화약이 한꺼번에 터져 나온 형국이었다. 다수 국민은 이러한 분열이 몹시 염려스럽고 두렵기까지 하다. 지금 국제적으로 경제가 무서운 불황을 겪고 있는 가운데 우리 경제의 앞날도 짙은 안개 속을 헤매는 판국에, 사회 전체가 이러한 분열과 갈등으로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다면 이는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사회가 발전해 가는 과정에는 사회의 기능과 구조의 분화가 활발히 일어나기 마련이다. 하는 일이 복잡하게 늘어나고 이를 수행하기 위한 새로운 집단들이 무수히 생겨난다.

이러한 사회적 분화(differentiation) 자체는 관리하기에 따라 발전에 도움이 되는 변화가 될 수도 있지만, 대처를 제대로 하지 못할 때는 사회가 갈기갈기 찢어지는 파국을 초래할 수도 있다. 작금의 우리 형편이 이런 모습이다. 사회적 분화는 매우 광범위하게 일어났는데, 이를 적절하게 다루지 못한 탓에 발전의 기쁨보다는 분열의 고통을 경험하는 지경에 이른 셈이다.

▼사회 분열-갈등 극에 달해▼

사회적 분화를 관리하는 길은 사회의 통합(integration)을 추구하고 달성하는 일이다. 분화와 통합, 이 두 과정은 같이 가야 한다는 말이다. 사회의 통합은 세 가지 주요 차원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활동과 기능이 다른 수많은 분화된 하위 단위들의 활동을 적절히 조정하고 자원을 둘러싼 경쟁을 현명하게 관리함으로써 상호의존적이면서도 서로 분리된 집단들을 포용하는 과제가 사회통합의 첫째 숙제다. 분화된 집단들은 부분문화를 형성한다.

이 부분문화들이 전부 제각각 표출되면 이념과 가치관에 심중한 혼란이 발생하여 사회가 걷잡을 수 없는 혼란에 빠질 우려가 있다. 따라서 사회통합의 두 번째 과업은 상징적 통일을 성취하는 것이다. 이념과 가치관의 일정한 합의를 얻어낼 수 있어야 한다. 분화된 부분단위들의 힘의 불균형으로 말미암아 노사 간, 도시와 농촌 간, 중앙과 지방 간, 상층과 하층 간의 계급적인 갈등관계가 형성된다. 이와 같이 이해를 달리하는 갈등집단들을 정치적으로 한데 아우르는 일이 사회통합의 세 번째 과제다.

지금 우리나라의 어지러운 갈등과 분열은 바로 이러한 세 가지 차원의 사회적 통합에서 거의 완전히 실패하고 있기 때문에 나타난 현상이다. 그러면 누가 어떻게 이 어려운 사회통합의 숙제를 풀어야 하는가? 정상적인 사회에서 주로 통합 기능을 수행하는 종교와 정치가 우리 사회에서는 오히려 가장 분열적인 부문인지라 아예 불합격이다. 결국, 마지막 기대는 리더십과 시스템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다. 리더십이 올바로 서야 시스템을 제대로 작동할 수 있고, 시스템이 효율적으로 움직여 주어야 리더십을 마음껏 발휘할 수 있다.

우선 갈라진 사회, 흐트러진 가치와 이념, 반목하는 계층을 포용하고 통합하자면 리더십과 시스템이 열려 있고 유연해야 한다. 언로(言路)가 막히고 의사소통이 어렵고 모든 것이 경직된 시스템은 쉽게 동맥경화증에 걸리고, 그런 시스템에 갇혀 정보가 막히고 의식이 굳어버린 리더십은 생동력을 상실하기 쉽다. 그리고 시스템이 제 기능을 다하려면 적정한 표준에 따라 합리적으로 적재적소에 사람을 쓰는 인사가 필수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사회통합의 첩경은, 국민이 그토록 염원하건만 좀처럼 얻어내기 힘든 리더십의 결단에 있다.

▼합리적 人事로 시스템 살려야▼

한마디로 리더십과 시스템을 움직이는 엘리트가 자기중심적이고 집단이기적인 욕심을 과감하게 버리고 진실로 국리민복을 위해 봉공하는 처절한 살신성인의 ‘공익정신’을 발휘하는 길밖에 다른 대안이 없다.

지극히 진부한 처방 같지만, 이것이 정답이다. 혼미를 거듭하는 정치가 경제난을 비롯한 오늘의 ‘총체적 난국’(어디서 많이 듣던 말이다)을 초래한 절체절명(絶體絶命)의 상황에서, 갈기갈기 찢어지고 모래알처럼 흩어지는 사회를 통합하여 정상적으로 돌아가게 하기 위해서는 진정으로 공공선을 위해 헌신하는 용기 있는 결단이 시급하다.

김 경 동(서울대 교수·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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