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일 오후 무등산 자락에 자리잡은 광주 북구 충효동 광주동초등학교 충효분교. 교실을 개조한 풍물실에서 제자들에게 둘러싸여 있던 초췌한 모습의 교사는 ‘스승의 노래’가 울려 퍼지자 두 눈에 눈물이 고였다.
전교생이 36명밖에 되지 않는 ‘도시 속의 산골분교’인 이 학교에서는 이날 암 투병을 위해 교단을 떠나는 문관식(文官植·53) 교사의 명예 퇴임식이 열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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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31일자 기사 "스승과 제자 함께 울었다" |
문 교사는 이 학교에 몸담은 2년여 동안 자연의 품속에서 때묻지 않은 아이들의 시심(詩心)을 일깨워 올해 5월 국내 최고 권위의 어린이글짓기대회에서 14명을 입상시키는 개가를 올렸고 폐교가 되다시피 한 분교를 전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학교로 가꾼 주인공.
제자들과 학부모들이 마련한 이날 퇴임식 행사는 조촐하지만 학생들과 학부모들의 정성이 가득했다.
풍물실 바닥에는 농사일로 바쁜 학부모들이 정성껏 준비한 떡과 과일이 차려졌고 학생들은 문 교사 옆에 둘러앉아 선생님께 드리는 편지를 낭독했다.
“선생님을 다시 볼 수 있게 돼 너무 너무 기뻐요. 하나님께 선생님 병이 낫도록 얼마나 간절히 기도했는지 몰라요. 선생님 이제 우리 걱정은 하지 마세요. 그리고 꼭 건강하세요.” 6학년 문옥현양(12)이 ‘선생님께 드리는 편지’를 또박또박 읽자 문 교사는 “말썽꾸러기가 이젠 다 컸구나”하면서 옥현양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선생님은 아이들뿐만 아니라 학부모들에게도 꿈과 용기를 심어준 분입니다. 건강을 기원하며 감사의 뜻을 이 패에 담았습니다.”
학생들의 편지 낭독에 이어 학부모 대표가 감사패를 건네자 문 교사는 양복 호주머니에서 200만원이 든 봉투를 꺼냈다.
“비록 저는 정든 교단을 떠나지만 우리 분교가 전국에서 으뜸가는 학교가 되길 바라는 마음에서 퇴직금을 쪼개 작은 정성을 보탭니다.” 학부모들은 “병원비를 대기도 벅찰텐데 웬 돈이냐”며 한사코 사양했지만 문 교사의 고집을 꺾지는 못했다.
문 교사는 5월 간암으로 ‘짧으면 3개월, 길면 6개월’이란 판정을 받았으나 3개월여에 걸친 요양생활과 최근 한달 간 방사선 치료로 암세포가 더 이상 퍼지지 않아 한 가닥 희망을 갖게됐다.
“암과 싸우는 동안 분교 아이들이 하루도 빠짐없이 e메일을 보내고 전국에 있는 제자들이 병문안을 와 며칠씩 간호해주는 것을 보며 사제간의 정을 다시금 느꼈습니다.”
퇴임식이 끝난 뒤 분교 아이들과 함께 가꿨던 텃밭을 둘러본 문 교사는 “교단에서 보낸 32년이 결코 헛되지 않은 것 같다”며 교문을 나섰다.
<광주〓정승호기자>shju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