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는 내년에 적자국채 발행 규모를 2조1000억원으로 짰다. 적자국채 발행을 올해보다 3000억원 줄였으므로 ‘팽창예산’이 아니라고 말한다. 하지만 속내를 뜯어보면 균형재정 목표는 이미 물건너간 것처럼 보인다.
정부재정은 이미 5년째 적자살림을 면치 못하고 있다. 적자 보전을 위한 국채발행 규모는 98년 9조7000억원에서 99년 10조4000억원으로 늘었다가 지난해 3조6000억원으로 줄어들었다. 이 규모가 올해 다시 2조4000억원으로 감소했고 내년엔 2조1000억원어치 적자국채를 찍는다. 하지만 2003년 균형재정, 2004년 이후 흑자재정을 통한 국가부채 상환이라는 정부의 청사진이 지켜지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경기침체에다 미국 테러사태 여파로 경제 불확실성은 더욱 높아지고 있기 때문.
진념(陳稔)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장관은 최근 “미국테러 등으로 세계경기마저 얼어붙는데도 정부가 균형재정만을 고집한다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며 이미 한발 물러섰다.
기획예산처는 내년도 예산안을 짜면서 이런 비난을 피하기 위해 나름대로 노력한 흔적이 보인다. 내년 예산규모를 본예산 기준으로 전체적으로 12조3000억원이나 늘렸으면서도 국채는 2조1000억원어치를 찍는 데 그쳤다. 대부분의 세입예산을 국세수입으로 조달하고 한국통신 매각 등 공기업 주식매각과 한국은행 잉여금 예상분 등 세외수입에 눈길을 돌렸다.
정부는 그동안 나랏빚을 갚을 기회가 있었는데도 빚 갚는 데 쓰기보다는 경기를 띄우는 데 예산을 썼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게 됐다. 기획예산처는 내부적으로 균형재정시기가 2003년보다 적어도 1∼2년 미뤄질 것으로 관측하고 있다. 상당수 재정전문가들은 “이미 건전재정 기회를 놓친 정부가 미국 테러 같은 외부 악재와 함께경기상황을핑계로 균형재정이 미뤄진다고 우겨서는 안 된다”고 지적하고 있다.
<최영해기자>yhchoi65@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