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 시어머님이 그리 자상한 타입이 못 되세요. 그러다 보니 자식들한테도 곰살궂고 인정있게 대하지 못하셨죠. 그래도 마음은 그런 분이 아닌데, 이번 명절에 그것 때문에 형제간에 다툼이 일어난 거예요.”
사연인즉, 추석날 아침 차례 잘 지내고 가족들끼리 둘러앉은 자리에서 셋째아들이 무슨 생각에선지 평소 잔정이 없는 어머니한테 원망하는 말을 꺼내 놓기 시작했다고.
며느리들 생일 한번 챙긴 적 있느냐? 며느리들은 고사하고 손자들 생일엔 할머니가 선물도 챙겨주고 하면 좀 좋으냐? 마누라 보기도 낯이 안선다. 처가하고도 너무 대조적이고. 그 양반들은 사위 생일 꼬박꼬박 챙기는 건 말할 것도 없고 외손자한테 얼마나 끔찍하게 하는지 아느냐? 등등.
보다 못한 큰아들이 대체 어머니한테 무슨 말버릇이냐 하며 큰소리가 나왔고, 결국 싸움으로 번지고 말았다는 것이다.
“창졸간에 몹쓸 어머니가 돼 참담해하시는 시어머님 뵙고 있자니, 제가 오히려 어쩔 바를 모르게 되더군요. 그 날 이후로 그때 생각만 하면 울화가 치밀어서 못 견디겠어요. 대체 어쩌자고 가족들끼리 그렇게 서로 이해하지 못하고 배려하지 못하는 걸까요?”
그녀는 대답을 듣고 싶어했다. 하지만 누구인들 그 질문 앞에 선뜻 명쾌한 해답을 내놓을 수 있을까? 나 역시, 아무리 부모 자식이나 형제 사이라도 자주 만나지 않다 보면 의사 소통에 어려움을 겪게 마련이다, 우리 가족 문화에서는 일상 생활에서 생기는 자잘한 갈등을 그때 그때 해결하기가 쉽지 않다, 그러니 고인 물이 썩듯이 쌓인 갈등이 폭발하는 게, 모순되게도 온 가족이 다 모이는 명절 때가 되기 쉽다. 그래서 오히려 명절 때 분란이 일어난다는 집들도 많지 않더냐? 정도의 얘기밖에 해 줄 수 없었다.
가족이라도 우린 저마다 서로 다른 성품을 타고 난다. 그 성품끼리 충돌을 일으킬 때도 많다. 그런데도 가족들 사이엔 그런 충돌이 생기면 안된다는 고정 관념 또한 갖고 있다. 그 때문에 작은 충돌이나 다툼도 더 못 견뎌하며 상처를 입게 되는 것이다.(물론 앞서 예를 든 아들의 경우는 어머니한테 차마 해선 안될 행동을 했지만)
결국 아무리 가족이라도 서로서로 하나의 풍경처럼 조화를 이뤄 살아간다는 건 여전히 어려운 숙제인 모양이다.
양창순(신경정신과 전문의) www. mind-op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