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는 19세기 쿠바 아바나 항에서 시작한다. 쿠바의 부유하고도 매력적인 커피 농장 주인 루이스(반데라스)는 사진 한 장을 들고 자신과 결혼하기로 한 미국 여인 줄리아(졸리)를 기다린다. 사진 속의 평범한 여인을 기대했던 루이스는 “얼굴로 판단할까봐 다른 이의 사진을 보냈다”는 줄리아의 황홀한 모습에 넋을 잃고 곧 결혼한다.
꿈같은 신혼도 잠시, 루이스는 점차 줄리아에게서 이상한 낌새를 발견한다. 몸에는 칼자국이 선명하고, 노래하는 새가 시끄럽다며 죽여버린다. 그리고 이내 줄리아는 루이스의 통장을 털어 달아난다.
영화는 중반까지 전통적 의미의 ‘팜므 파탈’(Femme Fatale·악녀)을 둘러싸고 끝없는 미로 속을 통과할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오리지날 씬’은 관객들이 추리력을 가동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주저앉고 만다.
난데없이 등장한 사립탐정 월터(토마스 제인)는 루이스의 돈을 훔쳐내기 위해 계략을 꾸민 줄리아의 파트너임이 쉽게 드러난다. 줄리아를 찾아낸 뒤 루이스는 죽일 듯한 눈빛으로 노려보다가 그녀의 눈물에 금새 양순해진다.
결과적으로 영화는 졸리의 눈부신 육체에 지나치게 의존하면서 스릴러 영화로서 유지해야 할 ‘방향타’를 잃은 듯하다.
이야기는 극단적으로 클로즈업 된 졸리의 입술에 포개져 곧 질식했고, 긴장도는 처음 드러난 그의 수밀도(水蜜桃)같은 가슴에 이내 허물어져 버렸다.
처음으로 ‘팜므 파탈’ 연기에 도전한 졸리는 ‘툼 레이더’의 라라 크로프트에 이어 또 하나의 ‘강한 여자’ 이미지를 경력에 추가하는 수준에서 만족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최근 ‘스파이 키드’ 등에서 이전 이미지와는 달리 ‘웃기는’ 역할을 맡았던 반데라스는 이제 졸리를 상대하기에는 늙어 버렸다. 관심을 모은 이들의 베드신은 시중의 플레이보이 비디오에서 자주 발견되는 꽤 자극적인 카메라 워크로 촬영됐다.
멕시코에서 만들어낸 쿠바 농장의 이국적인 풍경이 볼 만하다. 18세 이상 관람 가. 13일 개봉.
<이승헌기자>ddr@donga.com
구독
구독
구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