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젠 복귀할 때" 수차례 쪽지 남편 최수종 권유로 결심
영화 ‘몽중인’(夢中人)으로 4년 만에 연기 활동을 재개하는 탤런트 하희라(32)를 만나기 위해 그의 매니저에게 전화했더니 5일 오후 서울 압구정동 새리미용실 앞에 위치한 카페로 나오란다. 새리 미용실은 서울의 여성 절반이 이름은 들어봤을 명소. 약속 시간 20여분 앞두고 도착해 혹시나 하고 미용실 안을 둘러봤더니 하희라가 있었다. 미용사 두 세 명이 붙어서 그의 머리를 만지고 있었다.
시간에 맞춰 카페로 갔고 얼마 후 하희라가 들어왔다. 눈가에 약간의 주름만 발견될 뿐 가까이 봐도 출산 전 마지막 출연작이었던 1998년 KBS1 TV 일일드라마 ‘정 때문에’ 당시와 큰 차이가 없어 보였다.
그런데 하희라는 기자의 질문이 채 끝나기도 전에 쉬지 않고 말을 이어갔다. 그것도 많은 양을 짧은 시간에 쏟아내 잘 정리할 수 없을 정도였는데 대략 “그동안 쉬면서도 결코 놀지 않았다”는 내용이었다. 하희라는 “내가 원래 말이 빨라요”라고 했지만 출산 전, 그러니까 본격적 의미의 아줌마가 되기 전 이정도는 아니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그동안 주로 뭘 하셨어요?
“남편(탤런트 최수종) 권유로 수영을 배웠어요. 고려대에서 컴퓨터 강좌도 듣고 해서 인터넷은 웬만큼 해요. 주로 아이들(3살짜리 아들 민서와 2살짜리 딸 윤서) 물건 주문하는데 쓰죠. 영어 공부도 했는데 주로 CNN 청취 연습을 했어요. 그러고 보니 요리 공부도 했네요. 일주일에 한번씩 강사를 집에 모시고 한식 중식 일식을 두루 배웠고….”
하희라는 친하게 지내는 또 다른 ‘아줌마 탤런트’ 신애라 등과 함께 요리를 배웠는데, 이들과의 ‘회동’을 통해 쉬는 동안에도 연예인으로서 최소한의 ‘감’을 잃지 않으려 했다고 한다. 몇몇 연기자들의 연기 분석 같은 것도 했다. “하지만 다른 탤런트 ‘흉보기’인 경우가 많았죠. 우린 아줌마잖아요.”
-쉬니까 겁나지 않던가요? 다시 인기를 못 얻을 수도 있고.
“남편의 강권이 아니었다면 계속 쉬었을 거예요. 데뷔 이후 사실상 첫 휴식이었으니까요. 하지만 다시 연기를 하려니까 이전보다는 마음이 무겁네요. 요즘 다른 탤런트들이 연기하는 것을 보면 헷갈릴 것 같아 남편이 출연하는 ‘태조 왕건’ 이외에는 드라마를 일부러 보지 않았어요.”
하희라 말대로 그의 활동 재개에는 남편 최수종의 권유가 절대적이었다. 평소 아내에게 너무 잘 해 집에서 ‘최감동’으로 불리는 최수종은 요즘 들어 ‘이젠 복귀할 시간’이란 요지의 메모 쪽지를 수 차례 하희라의 핸드백 속에 넣었다고 한다.
지난달 29일 충북 충주에서는 영화 ‘몽중인’ 제작 발표회가 열렸는데 최수종은 하희라에게 사전 연락 없이 ‘축하주’를 사주겠다며 발표회장으로 차를 몰고 달려오기도 했다. 최수종은 당시 경북 문경에서 ‘태조 왕건’을 촬영중이었다.
-남편이 ‘태조 왕건’에 출연하면서 집에서는 별 일 없었나요?
“‘태조 왕건’ 때문에 저도 스트레스를 무척 많이 받았어요. 남편이 촬영중 자주 부상을 당하질 않나, 궁예만큼 목소리가 크게 들려야 한다며 배에 잔뜩 힘주고 말하다가 장이 꼬이기도 했지요. 동료 연기자로서 남편이 대하드라마 주인공을 맡은데 대한 야릇한 질투심 같은 것은 생각할 틈도 없었죠.”
이젠 이렇게 완연한 ‘아줌마’가 된 듯한 하희라. 내년 3월 개봉을 목표로 최근 촬영에 들어간 ‘몽중인’에서도 그는 아이 딸린 한 남자를 10년 넘게 해바라기처럼 바라보는 일본 여자 미야코 역을 맡았다.
“신파로 흐를 수 있어 다소 망설였지만 자세히 보니 순수한 사랑 이야기더군요. 저랑 함께 주연을 맡은 이경영 씨는 평소 친분이 두터운데 영화의 제작, 감독까지 맡았다네요.”
다시 촬영장소로 이동한다는 하희라는 기자와 작별 인사를 한 직후 곧장 휴대전화로 아이들의 저녁 식사를 챙기고 있었다.
▼영화 '몽중인'은…▼
◇유부남과 日여인의 아픈 사랑…이경영 제작-감독-각본-주연
영화 ‘몽중인’은 지난 봄 KBS2 TV 드라마 ‘푸른 안개’에서 방황하는 중년 남자를 연기했던 배우 이경영(사진)이 제작 감독 각본 주연을 맡은 작품. 한 유부남(이경영)과 그를 눈여겨 바라보는 일본 여인(하희라)의 아픈 사랑을 다룬 영화.
이경영은 이 영화에서 아내를 먼저 떠나보낸 시나리오 작가 윤호로, 하희라는 그를 연모하는 미야코로 나온다. 하희라는 1992년 영화 ‘백치애인’에서도 이경영을 흠모하는 역을 맡은 바 있다.
이경영은 이 영화의 배우 캐스팅을 위해 온갖 ‘개인 네트워크’를 동원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평소 하희라의 이모부와 절친한 사이인 이경영은 어느 날 하희라에게 “내가 이제 ‘전쟁’을 치르려 하는데 소총수만으로는 힘들다. 너 같은 핵무기가 필요하다”는 e메일을 보내 허락을 얻어냈다.
또 이경영과 오촌간인 가수 이현우는 어느 날 식당에서 밥값을 대신 지불한 이경영이 “출연료에서 공제한다”는 말 한마디에 덜컥 영화에 출연하게 됐다고. 이현우는 극중 하희라를 사랑하는 20대 청년 상록으로 나온다. 이경영과 의형제처럼 지내는 탤런트 겸 가수 김민종은 단돈 1만원에 출연을 결정했다는 후문이다.
<이승헌기자>dd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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