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단체의 의지 반영해야▼
인권위원회는 국가기관이되 기능은 국가감시기구여야 한다. 치유가 불가능한 심각한 인권침해는 개인이나 조직보다 국가권력에 의해 초래되기 때문이다. 국가인권위원회는 국가기관이면서 민간단체의 성격을 가져야 한다. 내용의 결정은 사회의 눈을 통해 이뤄져야 하고, 그 결론의 집행은 국가권력의 힘을 빌려 행해져야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간의 인권운동 단체의 운동 성과와 의지가 국가인권위원회 구성의 절차와 내용에 반영돼야 한다.
내년부터 본격 가동될 것으로 기대되는 인권위원회가 몇 가지 장애요소에도 불구하고 취지에 따라 제대로 운용되려면 인권위원 구성이라도 원칙에 따라야 한다. 결국 인권위원회 활동은 위원회의 의결을 통해 이뤄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미 위원장을 포함한 11인의 위원 중 국회가 4인을 선출한 데 이어 대통령이 4인을 지명했다. 대법원장의 몫 3인을 남겨두고 있는 가운데 최악의 사태는 면했다는 중간 관전평이 있는가 하면, 일부 위원에 대해서는 강한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국가인권위원회의 구성원리는 전문성 및 독립성과 공정성을 갖춘 사람을 다원성과 다양성을 반영해 투명한 절차에 따라 임명하는 것이다. 이는 인권위원의 자격과 선임절차를 어떻게 정하느냐에 따라 좌우된다. 그렇다면 ‘사회적 신망이 높고 인권에 관한 식견이 있는 자’라는 법무부안을 버리고 ‘인권문제에 관해 전문적인 지식과 경험이 있고 인권보장과 향상을 위한 업무를 공정하고 독립적으로 수행할 수 있다고 인정되는 자’로 정한 것은 적절하다.
그러나 선임 절차를 보면 법률은 처음부터 원칙을 거스르고 있다. 대통령과 국회 그리고 대법원장이 서너 명씩 나눠 선임하는 방식은 언뜻 보면 민주적인 것 같다. 하지만 그런 나눠먹기식으로는 다원성과 다양성의 요구를 충족시킬 수 없다. 인권위원의 다원성은 인권기구 독립성 보장의 장치가 되며, 다양성 확보는 다원성의 기초가 된다. ‘인권위원은 시민사회의 모든 사회적 세력을 다원적으로 대표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은 유엔의 국가인권기구의 지위에 관한 원칙이기도 하다. 게다가 국민적 대표성이 없는 대법원장이 지명권을 갖는 것은 우리나라 특유의 풍토로 비교법적으로도 유례를 찾을 수 없다. 나아가 그나마 이런 방식의 임명과정에 아무런 검증절차도 마련돼 있지 않다. 각자의 밀실에서 정치적 손익계산에 따른 분배의 관행에 따른다 할지라도 할 말이 없게 되는 것이다.
▼나눠먹기식 임명 독립성 해쳐▼
정말 우리 정당들은 어쩌면 그렇게도 당파적 이익에 철저할까. 적어도 인권을 바람직한 인류사회를 지향하는 국가의 공동가치로 인식한다면, 한번쯤 의외의 모습을 보일 수도 있지 않을까. 인권단체를 비롯한 사회 각계의 의견을 모아보고 자진해서 인사청문회를 가졌다면 누가 번거롭다고 불평했겠는가. 스스로 추천하고 선출한 사람에 대해 한마디 설명도 없다. 정치에 식상하고 정치인들에 분노한 국민은 끝까지 실망해야 한다. 오늘 내일 지명권을 행사할 대법원장이라도 과감성을 발휘하리라 기대할 수 있을까. 그렇다면 마지막 3인의 인권위원 지명이 아무리 늦어져도 탓하지 않을 것이다.
국가인권위원의 선출권과 지명권을 가진 사람들은 책임감을 느껴야 한다. 임명 방식에 관한 절차가 보다 구성원리에 맞게 법이 개정되기 전까지는 스스로 깨우쳐 권한을 행사해야 한다. 인권위원을 정치적 흥정의 대상으로 삼아서는 안 된다. 한 개인의 인권이 침해될 때 전체의 인권이 위태롭게 되듯이, 인권위원 한 명을 잘못 임명해 인권정책이 흔들리게 해서는 곤란하다. 국가인권기구는 국가의 인권침해 사실을 숨기기 위한 ‘알리바이 기구’가 아니지 않은가.
차 병 직(이화여대 대우교수·참여연대 협동사무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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