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무지개빛 등으로 장식된 도시… 베트남 '호이 안'

  • 입력 2001년 10월 11일 19시 13분


한 달에 한번, 환한 보름달 아래 강변 도시의 좁은 거리는 무지개빛 비단등(燈)으로 밝혀진다.

호이 안 시내의 구시가지를 산책하다보면 이따금 어둑한 빛을 내뿜는 1800년대 풍 티크 가구들을 전시해놓은 골동품 상점을 만날 수 있다. 지나간 시절의 기억을 되살려주는 보석상자 같은 이 골동품 상점을 보고 있노라면 소중하게 간직된 과거가 미래에 다시 되살아 날 것이라고 누구나 확신할 수 있다.

"보름달 축제는 이 마을의 역사적 유산 가운데 가장 소중한 것" 이라고 문화정보센터의 보 풍은 말했다. 그는 "이 축제는 3년전부터 시작됐으며 현재 관광객들에게 아주 인기를 끌고 있다"고 설명했다.

17세기부터 19세기까지 이 도시는 파이포(Faifo)라 불리는 국제항구였다. 이 항구에서 아시아와 유럽상인들은 비단, 계피, 목재와 칠기(漆器)를 사고 팔았다.

이 마을에 아직 남아있는 중국도자기 전시장, 환상적인 채색을 자랑하는 불교사원, 일본어 현판이 있는 다리는 중국-일본-말레이시아 상인들 그리고 이 곳에 자신들의 가정을 세웠던 사람들의 역사적 유산이다.

특히 호이 안에 중국인 화교들이 정착해 살기 시작하면서 중국 남부 분위기를 물씬 풍기게 됐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뚜봉(Thu Bon)강은 퇴적물로 덮여가기 시작했고 인근 다낭이 상업 중심지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20세기 초반, 호이 안은 잊혀진 도시가 됐다.

하지만 20세기 베트남에서 일어난 많은 전쟁에도 불구, 호이안의 건축물들은 가난과 상대적으로 외진 지리적 위치 덕분에 거의 훼손되지 않은 상태로 남을 수 있었다.

지난해 유엔으로부터 세계 문화유산으로 지정 받은 이후 호이 안은 '근세유적'을 보전하기 위해 엄청난 노력을 하고 있다. 그 결과 이 도시 주민들은 엄격한 건축 규제를 받고 있다.

작은 양복점을 운영하고 있는 구엔 띠 린은 "관광객들이 오기 시작하면서 우리는 돈을 벌기 시작했다. 이제 우리는 집을 새로 짓고 싶지만 공무원들은 금지하고 있다"고 불평을 늘어놓았다.

온갖 탈것들이 돌아다니는 길옆에 위치한 구시가지에는 많은 수의 레스토랑, 양복점, 갤러리들이 마을의 고요한 매력을 더해주고 있다. 마을의 그림 같은 풍경은 입소문을 타고 퍼져 중요한 관광코스로 자리잡았다.

▲떠오르고 있는 베트남 중부

베트남 지방 관청들은 더 많은 관광객을 유인하기 위해 옛 수도인 후에, 다낭의 차이나 비치, 미 송의 샴 타워, 호이 안이 있는 투자를 계속하고 있지만 현재 하노이와 호치민시를 관광하는 2백만이 넘는 외국 관광객 가운데 일부만이 베트남 중부 지방에 들르고 있는 상황이다.

지난 8월, 베트남 정부는 베트남 중부 관광산업 진흥을 위해 수백만 달러 규모의 관광객 유치 캠페인을 벌였다. 홍콩-다낭, 방콕-다낭 직항편을 새로 만들었으며 서울, 싱가폴, 상하이, 타이페이 직항편 관련 협상도 진행되고 있다.

여전히 많은 사람들에게 중부 베트남은 베트남 전쟁과 같은 말이다. 베트남 중부는 남북을 갈랐던 비무장지대와 10여년에 걸쳐 계속됐던 분쟁을 떠올리게 한다. 지금까지 베트남 관광객 대부분은 베트남 전쟁에 참전했던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요즘에는 단순히 추억의 장소를 찾기 위해 방문하는 관광객들은 줄어들었다.

▲다낭

중부 중심 도시인 다낭은 프랑스 식민지 시절에는 투렌으로 불렸으며 가로수가 심어진 넓은 길, 프랑스 스타일 건축물과 가로등이 켜진 강변 산책로로 유명했다. 다낭 자체에는 역사적인 기념물들이 많지 않지만 중부 지역 탐험을 위한 베이스 캠프 역할을 훌륭히 수행하고 있다.

캄보디아의 앙코르 와트와 인도네시아의 보로부두에 감명 받은 사람들이라면 다낭 남서쪽 75킬로미터쯤에 위치한 미 송(My Son)에 가보는 것이 좋다. 이 곳에는 무너진 벽돌 탑과 불교 사원들이 있다.

4세기에서 13세기까지 미 송은 찬파왕국의 정신적인 수도 기능을 수행해 왔지만 17세기에 이르러 이 힌두왕국은 베트남인들에 의해 멸망했으며 이들의 후손들은 뿔뿔이 흩어졌다.

베트남 전쟁 기간 중에는 베트콩들이 이 녹색 계곡을 기지로 사용했다. 미군은 이 지역에 폭탄을 퍼부었으며 대부분의 탑과 사원들은 파괴됐다.

현재 호치민시에서 살고 있는 구엔 반 뜨룽(62)는 유적 가운데를 걸어가면서 이번이 자신의 첫 방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 유적지에서 겨우 몇 킬로미터 밖에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자랐지만 전쟁기간 동안에는 올 수 없었다"고 설명했다.

"그때는 전쟁에만 관심이 있었는데다 여기 오고 싶어도 올 수 없었지. 결국 남아 있는 것이라곤 폐허 뿐이야" 뜨룽은 한숨을 쉬며 유적지 이곳저곳에 무성하게 자란 풀숲을 헤치며 걸어갔다.

▲후에

옛 왕국의 수도였던 후에는 다낭 북쪽에 위치해 있으며 구불구불한 하이 반 도로를 따라 서너 시간을 달리면 갈 수 있다. 이 길의 한쪽에는 숨이 막힐 듯 아름다운 산들이 펼쳐지며 반대편에는 반짝이는 푸른 파도가 넘실거린다.

이 도시는 1558년부터 1945년까지 베트남 구엔 왕국의 수도였으며 퍼퓸 (송 후옹) 강을 끼고 성장해 왔다. 200년 이상 된 씨타델 요새-궁전은 베트남의 가장 유명한 관광명소 가운데 하나다. 씨타델은 1805년부터 건설됐으며 1832년에 중건됐다. 1년에 15만명 이상의 외국인 관광객과 500만명 이상의 내국인들이 이 거대한 유적을 보기 위해 몰려온다.

씨타델은 중국 북경을 모델로 해 건설됐으며 6미터가 넘는 거대한 벽으로 둘러싸여 있는 왕궁이다. 미국과의 전쟁기간 동안 공습을 받아 상당부분 파괴 됐으며 왕궁 안에 있는 청동단지에는 총탄 자국이 선명하게 남아있지만 역사적 가치는 충분히 있는 곳이다.

프랑스와 미국을 상대로 한 두차례 전쟁에 모두 참여했다는 후인 반 띠엔(84)은 "조국의 아름다운 과거를 보기 위해 2-3년마다 한번씩 이 곳을 찾는다"고 말했다.

1968년 테트 공세(구정공세)때 공산세력은 이 지역을 25일 동안 장악했으며 도시 대부분을 파괴했다. 그때부터 이 거대한 건축물을 재건하는 역사가 시작돼 현재에 이르고 있다.

후에는 씨타델 외에도 강을 따라 만들어진 구엔 왕조의 무덤으로 유명하다. 화려하게 장식된 대형 무덤 바깥에는 돌로 만든 말, 코끼리들이 무덤을 지키고 있다. 큰 무덤은 40여개의 크고 작은 부속 건물로 이뤄져있다.


1993년 유네스코는 후에를 세계 문화유산으로 지정했다. 베트남은 후에 복구를 위해 수십억 달러 규모의 투자를 해왔다.

[AP=박종우 동아닷컴 기자 heyu@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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