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젠버그는 특이한 인물이다. 한 눈 팔지 않고 기술경제학에, 그것도 기술경제사의 연구와 저술 및 교육에만 매달렸다. 경제사 분야로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더글러스 노스 교수는 경제사 분야에서 기술은 네이선 로젠버그, 인구는 로버트 포겔, 제도는 자신이 가장 권위자라고 말한 적이 있다.
‘기술 및 진화의 경제학 연구회’에서 번역해 낸 이 책은 로젠버그의 저작 중 가장 잘된, 유명한 논문들을 모은 것으로, 아담 스미스, 칼 마르크스, 죠셉 슘페터 등 고전을 섭렵함을 물론 여러 가지 경험적 기술혁신에 대한 방대한 지식을 담고 있다.
그의 초기저작인 ‘기술과 미국의 경제성장’(1972)과 공저작인 ‘서양은 왜 부자가 되었나’(1986)를 빼면 그에게는 별로 뚜렷한 저서가 없다. 그밖에 그의 유명 논문은 ‘기술의 조망’(1976)과 이번에 번역된 책의 속편인 ‘캄캄한 상자에 대한 탐구’(1994) 등에 수록돼 있다. 블랙박스란 경제학에서 분석하기 어려운 ‘기술’의 문제에 대한 수사다. 그래서 역자들이 ‘캄캄한 상자 속’이란 표현을 삼가고 그냥 원어 발음대로 제목을 붙인 것 같다.
이 책의 특징은 첫째로 기술진보에 대한 간결한 설명을 하고 있고, 둘째로 경제학의 까다로움을 피하고 쉽게 쓰고 있으며, 셋째로 기술자체의 일반적 특성을 다루면서도 구체적 주제를 이해할 수 있게 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그는 조명체계나 야금술, 공정단축, 신기술 채택속도 등에 접근하고 있다.
과학과 기술의 양면성을 강조하는 로젠버그의 입장을 살펴보자. 19세기 후반 이후부터는 기초과학과 산업기술의 관계가 점차 밀접해지고 과학과 기술의 접촉영역이 커지며 산학협동이 늘어나고 있다.
그러나 기술이 곧 기존의 과학적 지식의 응용이라고 말하기는 곤란하다. 역사적으로는 기술이 과학지식의 축적과 별로 관계가 없던 시기가 있었고, 최근에 들어서야 과학지식의 발전이 기술에서 매우 중요하게 됐다. 또한 이것은 산업분야에 따라 다르다. 이에 관해서는 필자의 글, ‘기술, 경제, 역사 연구서설’(‘경제논집’40호, 2001년9월)에서도 언급한 바 있다.
이 책에는 내용상 기술경제사에 치중하느라 그랬겠지만, 요즘 기술경제학에서 자주 거론되는 국가 기술혁신 체계, 일반목적기술, 기술경제 패러다임, 지식생산의 산업조직, 내생적 기술진보를 상정한 새 성장이론, 정보기술, 생명과학, 신소재 산업, 노동문제, 국제무역문제 등에 관한 언급이 없다. 저자의 차후 저서에서 이를 기대해 본다.
최근 로젠버그가 서울대 초청강연을 개인적 사유로 못하게 된 일은 아쉽다. 하지만 이 책의 번역 출판이 소위 지식경제를 향하고 있는 우리나라에 도움이 되리라는 데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기술혁신은 20세기 말에 산업발전에서 종교적 교리가 됐다. 기업은 기술혁신을 이윤과 시장점유율 증가의 관건으로 간주하며 정부는 국가경쟁력 제고의 최우선 방도로 파악한다. 기술은 “정치에서의 좌파와 우파를 통합시키는 새로운 신학”(The Economist, 1999)이라고도 한다. 믿을 수 있을까.
양 동 휴(서울대 교수·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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