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정보 기자의 반집&한집]이세돌 놓는 순간 "앗! 실수네"

  • 입력 2001년 10월 14일 18시 42분


흑- 이세돌3단 백-이창호9단
흑- 이세돌3단 백-이창호9단
▣ 이창호-이세돌 삼성화재배 8강전

흑돌을 쥔 이세돌 3단의 손이 하변 위를 맴돌다가 다시 바둑통 속으로 들어간다. 이내 바둑돌을 다시 쥐었지만 역시 갈 곳을 망설인다. 이윽고 이 3단은 최후의 결심을 한 듯 좌하변 쪽에 바둑 돌을 딱하고 내려놓는다. 장면도 흑 1.

그러자 신중하기로 소문난 이창호 9단이 1초의 망설임도 없이 백 2로 석점을 단수 친다.

순간 ‘앗’하는 표정이 이 3단의 얼굴에 스친다. 이 3단의 수읽기 회로에서 전혀 없었던 수. 백 2가 놓여지고 보니 흑 석점을 잇지 못한다는 것을 한눈에 알 수 있었지만 이 3단은 백 2를 순간적으로 보지 못한 것이다.

10일 부산대학교 상남국제회관에서 열린 6회 삼성화재배 세계바둑선수권대회 8강전. ‘이-이’의 대결은 그 어떤 판보다 관심을 끌었다. 올 5월 LG배 세계기왕전에서 이 3단의 2연승후 3연패의 명승부를 펼쳤던 두 대국자의 대결은 이제 ‘빅카드’로 떠오른 느낌이다.

또 이 3단이 최근 속기전인 KBS 바둑왕전 승자결승에서 이 9단을 불계로 물리쳤기 때문에 이 3단의 심리적 우세를 점치는 바둑 관계자들이 적지 않았다.

이 3단은 이날 바둑에서 초반부터 강타를 떠뜨리며 이 9단을 몰아부쳤다. 끝내기의 달인인 이 9단에게 미세한 바둑을 허용해서는 안된다는 이 3단 나름대로의 작전.

검토실에선 우변에서 거대한 패를 이긴 흑이 절대 우세하다는 평가를 내리고 있었다. 그런데 중반 무렵 별다른 전투나 변화가 없었는데도 어느새 계가 바둑으로 어울린 바둑을 보고 검토실은 또 한번 감탄하고 있었다. 딱히 찝어낼 순 없지만 이 9단 특유의 저력이 발휘됐다는 평가였다.

하지만 국후 두 대국자의 얘기는 완전히 딴판이었다. 우변 패싸움 결과는 백에게 불리하지 않았다는 것. 오히려 백이 대세를 리드했으며 흑은 계속 승부수를 걸어야 하는 입장이었다는 얘기였다. 그만큼 두 대국자의 이날 바둑은 판단하기가 어려운 난해한 바둑이었다.

어쨋든 흑이 하변에서 던진 승부수가 성공해 바둑은 오후 6시가 넘어야 끝날 수 있을 것 같은 분위기였다. 하지만 흑 1의 실수가 형세를 완전히 백쪽으로 돌려놓았다. 흑 1로 ‘가’ 등에 놓아 중앙 쪽을 보강했으면 미세하지만 흑도 희망이 있었다. 자책을 거듭하던 이 3단은 흑 3으로 석점을 이었다. 석점을 버리면 승부가 안된다고 보고 버틴 수. 하지만 이 9단은 이미 수읽기가 끝났다는 듯 번개처럼 백 4로 뚫고 나왔다. 이에 대해 흑의 응수가 없다. 좌우 대마 중 하나는 백의 수중에 떨어진 것. 이 3단은 10여수 더 두어보다가 돌을 던졌다. 188수 끝 백 불계승.

<서정보 기자>suhcho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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