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트시즌]"우정은 우정 승부는 승부"

  • 입력 2001년 10월 18일 18시 23분


삼성 이승엽(25)과 두산 박명환(24)은 야구계에 소문난 단짝이다.

나이는 한 살 차로 이승엽이 위지만 때로는 친구처럼, 때로는 형제처럼 붙어다닌다. 비시즌 기간이면 이승엽이 서울에 올라올 때 아예 박명환의 집에 숙소를 정할 정도. 이승엽은 “친형제 이상으로 가깝게 지내는 사이”라고 스스럼없이 밝힌다. 98년 우연히 식사자리에서 동석한 이후 4년째 둘의 남다른 우정은 계속돼 왔다.

둘 사이에 금이 간 적은 딱 한번. 99년 프로야구선수협의회 사태가 발생했을 때였다. 당시 ‘강경파’였던 박명환은 이승엽이 팀사정 때문에 선수협에 가입하지 않자 “비겁하다”며 등을 돌리고 휴대전화의 단축키 36번(이승엽의 등번호)에 저장돼 있던 이승엽의 전화번호를 지워버렸다. 하지만 형제처럼 지내던 인연이 단번에 끊어지긴 힘든 법. 선수협 문제가 해결되자 둘은 다시 예전의 우정을 쌓아갔다.

피만 섞이지 않았을 뿐 형제나 다름없는 둘의 대결은 20일부터 열리는 한국시리즈의 관심사 중 하나다. 이승엽은 삼성의 간판타자로, 박명환은 두산 구원투수진의 기둥으로 각각 팀내 투타전력의 ‘핵’. 특히 박명환은 지난해와 올해 두차례 포스트시즌에서 4승1패 2세이브를 기록중인 ‘포스트시즌의 사나이’다.

올시즌 둘의 맞대결에선 4타수 2안타에 볼넷 2개, 삼진 2개로 이승엽의 승리. 하지만 박명환은 “승부와 상관없는 상황에서 맞선 게 대부분이었기 때문에 솔직히 치라고 준 공들이 많았다”며 “승엽이 형이 몸쪽에 약점이 많을 걸 알면서도 행여나 몸에 맞을까봐 일부러 아웃코스쪽으로만 던졌다”고 털어놨다. 제대로 정면승부를 하지 않았다는 얘기. 그는 “한국시리즈에선 절대 봐주지 않을 것”이라고 ‘호언장담’했다.

공교롭게도 둘은 한국시리즈 우승경험이 없다. 95년 입단한 이승엽은 삼성의 ‘포스트시즌 징크스’ 탓에 번번이 눈물을 흘렸고 96년 프로에 뛰어든 박명환도 지난해 한국시리즈 7차전에서 현대에 무릎을 꿇는 바람에 우승의 환희를 맛보지 못했다. 때문에 우승에 대한 간절함은 둘 다 마찬가지.

특히 올시즌 뒤 해외진출을 노리고 있는 이승엽은 “팀을 반드시 우승시킨 후 홀가분하게 큰 무대로 떠나겠다”며 의욕이 대단하다.

<김상수기자>sso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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