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불교종단협의회 부설 ‘법음을 전하는 사람들의 모임 풍경소리(이하 풍경소리로 약칭)’는 지난 2년간 서울 부산 대구 등의 지하철역에 게시해온 60여편의 ‘자비의 말씀’을 모아 ‘풍경소리’라는 단행본으로 펴냈다.
‘자비의 말씀’은 200자 원고지 2장 미만의 짤막한 분량으로 복잡한 지하철을 타고 오가는 이들에게 띄운 ‘산사에서 온 편지’ 같은 글.
얼마전 서울 지하철 2호선 을지로 3가역에서 있었던 일. 누군가가 현금 8만원을 넣은 편지 한통을 이 역으로 보내왔다. 편지 안에는 ‘지하철역 구내에 걸려 있는 자비의 말씀을 읽고 그동안의 행동이 부끄러워 공짜로 탄 지하철 요금 5만원과 풍경소리를 위한 후원금 3만원을 보낸다’는 사연이 함께 들어 있었다. ‘자비의 말씀’이 상습적인 무임승차자의 마음을 잔잔히 흔들어놓은 것이었다.
풍경소리 사무처장 이용성씨에 따르면 이런 에피소드도 있다. 한번은 소설가 김성동씨의 ‘병속의 새’란 글이 실렸다. 병속에 든 새를 병을 깨뜨리지도 않고 새를 다치게 하지도 않고 어떻게 꺼낼 것인가 묻는 것으로 끝나는 글이었는데 이 글이 실린 후 뜻밖에 많은 전화가 걸려왔다. 본래 정답이 있을 수 없는 불교식 화두(話頭)인데 전화를 건 사람들이 자꾸 정답을 물어보는 바람에 이씨가 보름간 혼이 난 적도 있다.
풍경소리가 처음 지하철 게시판을 통해 포교를 시작한 것은 1999년 7월. 이미 10여년전부터 지하철 게시판을 통해 전도를 하던 개신교의 ‘사랑의 편지’가 모델이 됐다.
그동안 수필가 맹난자, 시인 김원각, 소설가 김성동 이재운 정찬주, 법현 스님 등 18명이 ‘자비의 말씀’에 글을 올렸다. 전적으로 창작인 작품도 있고 불경 설화 등에서 따온 글도 있었다. 전각으로 유명한 정병례씨의 작품이 삽화로 사용돼 운치를 더했다.
서울 성북구 보문사내에 사무실을 갖고 있는 풍경소리는 이씨와 간사 3명이 운영하고 있다. 기획간사 임현규씨는 “‘자비의 말씀’ 포스터는 한달에 2번 정도 글을 교체하고 있다”며 “운영비는 지하철역 부근 사찰들로부터 협찬을 받아 충당하고 있다”고 말했다.
각각 서울과 부산에 상주하는 관리간사 2명은 일일이 지하철역을 돌아다니며 포스터를 교체한다. 관리간사 김성민씨는 “서울과 수도권 전 지하철역을 돌아다니는데는 꼬박 13일이 걸린다”며 “한달에 두번씩 수도권 지하철역을 ‘섭렵’한 경험을 되살려, 곧 오픈할 홈페이지(www.pgsori.com)에 지하철 몇 번째 칸에 타야 환승을 빨리 할 수 있는지 노하우를 공개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송평인기자>pis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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