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마음의 점' 빼곡한 최선호 '점심' 전

  • 입력 2001년 10월 21일 18시 36분


멀리서 보면 푸르스름하거나 불그스름한 색이 화면 전체를 엷게 뒤덮고 있는 가운데 깨알 같은 글자들이 빽빽이 박혀 있다. 화려하지 않고 은은하면서도 깊은 맛을 풍기는 현대의 미니멀리즘적인 작품으로 보인다. 그러나 자세히 들여다보면 인쇄되거나 직접 쓰여진 고서(古書)의 한자(漢字)들, 그리고 그 옆에 무수히 찍혀 있는 색색의 점들이 전통과 세월의 무게를 느끼게 한다.

11월2일까지 서울 종로구 팔판동 갤러리 인에서 ‘점심(點心)’을 주제로 열리고 있는 화가 최선호씨(44·한국전통문화학교 교수)의 작품전에는 이 같이 현대적 미감과 전통 미감이 어우러져 있는 작품들이 전시된다. 최 씨는 캔버스 위에 고서(古書) 낱장들을 붙이고 그 바탕을 쪽이나 연지 등 전통 안료로 묽게 칠한 뒤 글자 옆에 많은 점들을 찍음으로써 화면에 내용을 부여하고 리듬감을 준다. 그는 “참선하는 마음가짐으로 수많은 점들을 찍었다”며 “단순한 점찍기의 반복에서 손맛과 감정과 정신의 깊이를 담아내려 했다”고 말했다.

지난해까지 단순하면서도 깔끔한 단색화면의 작품들을 선보였던 그가 이번에는 화면 속에 형태를 넣기 시작한 것. 그는 “한국적 색감을 보여주는 단계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한국 문화의 형태와 분위기를 보여주려 했다”고 말했다.

최씨가 사용하는 고서는 서울 인사동에서 구입한 ‘논어’ ‘맹자’ 등으로 여기서 떼어낸 고서 낱장의 한자들은 뜻보다는 시각적 이미지로만 활용된다. 유교적 선비정신을 느끼게 하는 장치다.

현대와 전통을 넘나드는 그의 작품은 서울대 동양화과를 졸업한 뒤 한국의 전통문화(1980∼88년 간송미술관 연구원)와 서구의 현대미술(1991년 미국 뉴욕대 대학원 졸업)을 두루 공부한 그의 경력에서 비롯되는 것으로 보인다. 그는 “이 땅의 아름다운 자연과 유구한 인문학적 깊이를 단순하게 표현하고 싶다”고 말했다. 02-732-4677

<윤정국기자>jkyo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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