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대에서 피아노를 전공하는 K양(20)과 친구들은 벌써부터 앞길 걱정에 한숨부터 나온다. 국가 차원에서 순수예술에 대한 확실한 재정 보조가 제공되는 유럽은 이들에게 ‘약속의 땅’처럼 생각되지만 20년 넘게 국내에서 교육받은 철저한 ‘토박이’들에게 유럽진출의 길은 막막하기만 하다.
이화여대에서 현대무용을 전공하고 현재 스위스 취리히 벤투라 무용단에서 활동하는 이용인씨(28·여)를 최근 스위스에서 만났다.
그 역시 ‘토박이’ 출신으로 유럽에서 비교적 안정된 생활을 찾기까지 끊임없는 시련과 도전에 맞서야 했다. 이씨는 대학시절 장래를 촉망받는 무용수였으나 졸업과 함께 맞닥뜨린 것은 후진적 수준에 머물러 있는 국내 예술진흥정책과 그로 인한 대중들의 썰렁한 반응이었다. 2년여를 국내에서 활동했지만 기본적인 생활조차 불가능할 정도의 임금으로는 더 이상 춤출 수 없다고 생각했다.
이씨는 1999년 무작정 유럽으로 건너가 인터넷을 통해 세계 무용단의 오디션 일정을 검색하는 등 자력갱생의 길에 나섰다. 그는 2000년 3월 오스트리아 린츠 발레단 오디션에 합격해 활동하다가 8월 다시 이 곳으로 옮겼다.
“이 곳에 와서 가장 좋은 건 일단 돈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에요. 예술을 하는 입장에서 돈 문제를 운운하는게 좀 말하기 거북하지만 생활이 돼야 예술도 가능한 것 아닐까요? 국내에서는 무리한 레슨을 부업으로 병행하지 않고는 생활이 어려울 정도였어요. 이 곳에서는 무용단에서 지급되는 돈 만으로도 충분히 생활할 수 있어요. 사실 그게 당연한 건데….”
우리의 예술 인력이 유럽 등 선진 사회에 진출해 그 곳에서 뿌리를 내리는 것은 반가운 일이다. 그러나 그 발판을 우리가 제공한 것이 아니라 결국 그들을 밖으로 내몬 것이라면 이야기는 다르다. 국내 예술 기반이 자리를 잡으려면 어디부터 어떻게 시작해야 할까.
<취리히〓김수경기자>skki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