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언대]김성도/우리 민족의 치수 단위 되살리자

  • 입력 2001년 10월 23일 18시 32분


인간이 거주하는 건축에서 인간을 기본으로 한 단위가 제외된다면 이미 그것은 인간을 위한 건축이 될 수 없다. 서양이 그들 역사의 뿌리로 삼고 있는 이집트의 경우 손가락의 길이에서 유래한 디지트(Digit), 한 손의 폭에서 유래한 팜(Palm), 그리고 팔꿈치에서 중지 끝까지의 길이를 나타낸 대(大) 큐빗(Royal Cubit)이 건축의 기본 단위가 된 것을 볼 수 있다.

이러한 신체를 기준으로 한 치수 개념은 고대 그리스 이래 서양 전역에서 오늘날까지 이어져 사람의 발 길이를 측정 기준으로 삼은 피트가 서양에서 일반화된 기본 단위가 되었다. 이 피트는 과거 사람의 발 크기의 차이로 인해 25∼34㎝로 다양했으나, 미국의 경우 1893년 피트를 미터로 환산해서 사용하기 시작해 1959년부터 30.48㎝를 1피트로 정해 사용하고 있다.

미터법이 제정된 시기는 제국주의의 팽창기로서 식민지 시장을 자신들의 시장 속에 흡수하기 위해 도량형 통일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시기였으며, 또한 서구 열강간의 시장 교류를 위해 보조적으로 이용될 수 있는 상호 공통된 단위가 필요한 시기였다.

반만년의 역사를 간직한 우리의 전통 건축에서는 기준이 되는 치수 단위로 척(또는 자)과 이를 분할한 푼, 치와 조합한 평이 있어 오늘날까지 전통 건축물에 적극적으로 활용되고 있다. 그 결과 혼수 품목에 어김없이 오르는 안방 장롱의 경우 방 크기에 따라 9자 장이나 11자 장 등이 선택되는 것을 볼 수 있다.

이제 21세기를 맞아 누구나 손쉽게 컴퓨터를 사용할 수 있는 시대가 되어, 도량형도 손쉽게 치환할 수 있는 사회를 맞게 되었다.

오랜 세월을 통해 형성된 기본 단위는 단순한 단위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우리 민족의 신체적 조건과 생활, 과학 및 철학이 스며들어 살아 있는 용어인 것이다. 이러한 소중한 우리의 단위는 금지의 대상이 될 수 없다. 혼란의 우려가 있다면 괄호 속에 미터법에 근거한 수치로 보조하면 된다.

김성도(아니마 건축사사무소 대표

공학박사)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