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날 공청회에서는 개편 시안에 쏠린 관심 못지 않게 행사장을 ‘점거’하다시피 한 400여명의 실업계 고교 관계자들이 눈길을 끌었다. 이들이 ‘무언(無言)의 시위’에 나선 것은 학생 모집이 어려워 고사 위기에 처한 실업고의 사정을 개편안에 반영해 달라는 뜻이었다.
실업계 고교들은 “실업계 교육과정이 수능시험에 반영될 수 있도록 실업계열 시험을 신설해야 한다”며 “과거처럼 동일계진학 가산점 등의 특혜를 원하는 것이 아니라 공정하게 시험을 치를 기회만 달라는 뜻”이라고 주장했다.
사실 실업고생들이 대학에 가기란 여간 힘든 게 아니다. 기초 학력이 낮은 탓도 있지만 자기가 배운 내용이 시험에 나오지 않아 인문계나 자연계 공부를 따로 해야 한다. 4년제 대학 진학률은 12.7%에 불과하다.
전체 고교생 3명 중 1명이 실업고에 다닐 정도지만 이들은 ‘공부 못하는 아이들’이란 사회적 냉대에 가슴앓이를 하고 뒤늦게 공부를 열심히 해도 ‘패자 부활전’에서의 승리는 어렵기만 하다.
이 때문에 실업고 기피현상이 심해 올해 신입생 미달률이 7.5%(1만6807명)나 됐다. 11월이면 실업고 교사들은 학생 유치에 혈안이 된다.
조웅(趙雄) 서울동구여상 교장은 “가난한 집안 출신의 실업고생들이 대학 진학 기회에서도 불이익을 받아 가난이 대물림되는 사회 문제가 있는 만큼 대책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실업고의 집단행동은 정부의 실업 교육 정책이 실패했음을 입증하는 것이다. 실업고가 망하면 전문 직업인력 양성 체제도 무너진다. 실업고도 산업 변화에 맞는 교육과정 개발 등의 노력을 해야겠지만 교육인적자원부도 이들의 주장을 무시하지 말고 실업교육 정책 전반을 재점검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이인철<사회부>inchul@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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