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인 반도체 불황에 삼성전자가 예외일 수 없고 또 이 회사가 전략상 감산하지 않았던 것도 수익 악화의 한 원인이기는 했겠지만 반도체부문 분기 실적에서 3800억원씩이나 적자를 낸 것은 충격적이다. 외환위기 직전 반도체 호황에 한껏 취해 있다가 갑작스러운 수출 부진으로 무역수지가 적자를 기록하면서 경제가 어려워졌던 사실을 상기할 때 전조가 영 좋아 보이지 않는다.
정부는 당시의 교훈을 새겨 수출업종 다양화를 통해 반도체 의존도를 상대적으로 낮추겠다고 수도 없이 강조해왔지만 도대체 무슨 일을 했고 어떤 실적이 있는지는 알려진 게 별로 없다. 정치장관이 온 후 업무 외적인 일정이 많아 산업자원부 관리들조차 장관 얼굴 보기 힘들다는 푸념이 나올 정도라면 수출이 9개월째 감소하는 심상치 않은 일이 일어나는 것도 우연이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철강문제도 그렇다. 미국 내 관련업계의 불황에서 비롯된 일이기는 하지만 미 국제무역위원회(ITC)가 무더기로 산업피해 판정을 내린 것은 여간 불안한 일이 아니다. 아직 몇 단계 절차가 남아있기는 하지만 지금 같은 우리 정부의 대응으로는 전망이 비관적인 것이 사실이다.
한중 마늘분쟁에서 망신을 당했고 한창 진행중인 하이닉스반도체 문제에 이어 자동차와 조선 등 수출 주력부문에서 통상분쟁이 기다리고 있는데 여기까지 오도록 통상교섭본부가 제구실을 다 했다는 인상을 주지는 못한다. 통상교섭본부 출범 당시의 주무 인력이 인사 때마다 자리를 떠나 전문성이 약해진 것도 문제지만 관계 부처와 협조 분위기를 이끌어 내지 못하고 있는 고압적 업무 처리 자세도 비판의 대상이다.
외국과 정치적 우호관계를 유지해야 하는 외교통상부가 협상과 투쟁으로 경제적 실리를 얻어내야 하는 통상 업무를 함께 관장하는 기형적 정부 조직이 존재하는 한 앞으로 제2, 제3의 통상분쟁은 예고된 것이나 다름없다. 이런 상태라면 통상교섭본부를 외교부 안에 설치한 것이 ‘국민의 정부’ 최대 실책 가운데 하나로 기록될 것이다.
정부가 수출 관련 부처의 조직을 재점검하고 좀 더 실현 가능성 있는 대책을 서둘러 내놓기를 촉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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