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아마추어 페스티벌 앙상블 '카페'…우린 '외인악단'

  • 입력 2001년 11월 1일 18시 46분


서울 서초구 예술의 전당에서 가까운 서초동 광림빌딩 지하 연습실.

3일 저녁 서울 영산아트홀에서 공식연주회를 앞둔 ‘한국 아마추어 페스티벌 앙상블(Korea Amateur Festival Ensemble)’ 단원들이 연습에 몰두하고 있다.

현악기들을 시험적으로 켜보는 튜닝 작업으로 소란하다. 방음장치 덕분에 주변의 항의를 안 받고 연습할 수 있는 것이 이들은 무척이나 고맙다.

#그들의 카페

모임의 약칭은 카페(Kafe), 이들은 가볍게 차 한잔 하러 카페에 온 듯 푸근함을 느낀다.

지휘자 방영호씨(KBS 교향악단)가 지휘봉을 잡자 연습실은 갑자기 정적에 휩싸인다. 그가 악보를 보며 지시하는 것은 연주회 레퍼토리의 하나인 요세프 수크의 ‘현을 위한 세레나데’. 지휘자가 허공에 손을 던지자 바이올린 비올라 첼로의 활들이 일제히 움직이기 시작한다. 이들 모두가 하나의 거대한 악기가 되는 순간이다. ‘카페에 온 듯한 푸근함’은 절대 긴장으로 바뀐다. 다양한 직업의 생활인들인 단원들이 제나름의 열반(涅槃)을 맛보는 시간이다.

#가지 못한 길, 그러나 반드시 가고 싶었던 길

카페 단원들에게 음악은 멀리서 아스라이 보이는 길이다. 어쩌면 이렇게 계속 연주를 하다 보면 저절로 그 길 끝의 무언가에 다다를 것 같기도 하다. 그래서 생업과 음악을 병행하는 생활을 벌써 10년 넘게 해오고 있다.

정단원 9명과 준단원들로 이뤄진 이들의 명함 전화번호란에는 유난히 ‘2828’ ‘2875’ ‘2804’ 등의 숫자가 많다. 이들은 이 숫자들이 ‘이빨이빨’ ‘이빨치료’ ‘이빨공사’라는 뜻임을 안다. 단원 상당수가 치과의사들인 것이다.

카페 결성을 주도한 김용범씨(39)도 그렇다. 그는 서울 중구 다동에서 연세드림치과를 운영하고 있다. 비올라 수석인 그는 치과의사와 비올라 간에는 거리가 있다는 걸 인정한다. 치과의사였던 아버지와 서울대 음대생이었던 어머니가 ‘음악에 빠져 사는 치과의사’인 그를 만들었다.

어릴 때부터 바이올린을 배웠으며 고교 때는 4인조 쿼렛을 조직했던 ‘학생 명사’였다. 하지만 장남인 탓에 ‘가업’을 이어야 했다. 결국 연세대 물리학과-한림대 의대-연세대 치대를 거쳐 치과의사가 됐지만 학창 시절 내내 바이올린을 들고 등하교를 한 탓에 아직도 대학 수위 아저씨들은 그를 음대생으로 알고 있다고 한다.

그가 ‘카페’의 전신인 ‘오존(Ozone) 체임버 앙상블’을 만든 것은 89년. 음악회마다 객석에서 마주치곤 하는 각 대학 전직 악단장들을 끌어모았다. 이들은 97년 ‘무지카 아카데미아’로 이름을 바꾼 후 해산도 했다가 지난해 다시 모여 ‘카페’를 결성했다. “우리가 음악 없이 어떻게 살 수 있으랴”는 게 이유였다.

준단원들은 ‘카페’의 웹사이트(www.Kafe.org) 등을 보고 찾아온 이들이다. 모두 모여 보니 의사, 교수, 한국통신 직원, 연구원, 외국계 회사원 등 갖가지 직업을 가진 그야말로 ‘외인악단’이었다. 하지만 지난해 연주회에서 들려준 ‘볼프의 이탈리안 세레나데’ 같은 곡 연주는 “결코 아마추어의 솜씨가 아니다”라는 찬사를 들었다.

평가가 흔들리지 않기 위해 단원들은 최선을 다한다. 이용범씨는 치과 개원 때부터 원장실을 연습실로 쓰기 위해 구조를 바꾸었다. 악기 소리가 내부에서 소화되도록 원장실을 병원의 깊은 곳으로 몰아넣고 들어가는 복도를 한번 꺾었다. 같은 단원인 이시형 강릉대 교수는 “간호사들이 불친절하면 이 원장한테 혼나는 정도다. 하지만 이 원장이 연습할 때 불평하면, 바로 잘린다”며 손날로 목을 베는 시늉을 해 보였다.

#그들의 꿈

단원들은 앞으로 ‘카페’를 영국 프로 악단인 ‘세인트 마틴 인 더 필즈’처럼 키울 생각이다. 정교한 실내악으로 음반을 내고, 수십년 전통을 만들어내겠다는 것이다.

단원 오병섭씨(바이올린·인천 청원치과)는 “아마추어들을 위한 ‘음악 캠프’도 열 생각이다. 때가 되면 스트라디바리우스 같은 고가의 명품 악기들을 구입해 재능 있는 소년들에게 대여해 주는 ‘스트라디바리 소사이어티’ 같은 일도 해 보고 싶다”고 말했다.

3일 선뵐 체코 작곡가 수크의 세레나데는 스승 드보르자크의 딸 오치리에에게 반한 수크의 영혼이 담겨 있는 곡이다. 한눈에 반했던 여성에게 보내는 이 선율의 편지는 카페 단원들이 어린 시절 정신 없이 몰두했던 음악에 대한 사랑과 닮은 데가 있다.

세레나데 마지막 대목인 4악장의 화려한 하강구와 눈부신 종곡…. 이들은 음악을 통해 그 어떤 찬연한 순간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 것이다.

▼'카페' 노총각 악단장 반동원씨…"악단과 결혼했죠"▼

‘카페(Kafe)’ 악단장으로 바이올린 경력 34년째인 반동원씨(38·사진)의 첫 인상은 ‘예술을 할 것 같은 얼굴’이다. 섬세하면서도 유머러스해 보인다.

그에게는 하지만 몇 가지 의외의 측면이 있다. 우선 ‘국방부 군인공제회 소속 감사관’이라는 직책은 언뜻 음악과는 거리가 먼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벌써 직장생활 만 10년째인 그가 능력을 인정받고 있는 생활인인 것만은 분명하다.

두 번째 놀랄 만한 점은 아무리 봐도 모자란 데가 없는 그가 휑뎅그렁한 아파트에서 홀로 사는 노총각이라는 것. 그는 “악단과 결혼했을 뿐”이라고 대답한다.

그가 ‘생업과 음악’을 겸하는 모습은 어찌 보면 낭만적이면서 처절하기도 하다. 퇴근 후에 창문을 꼭꼭 닫은 채 연습해온 그는 어느 순간 주변의 원성을 사고 있다는 걸 알게 됐다. 어느 날 문에 “예술도 좋지만, 예절을 지킵시다”라는 메모가 붙어 있더니, 얼마 후에는 자정 무렵에 바로 위층(14층) 베란다에서 항의하는 고성이 터져 나왔다. 결국 그는 올해 수백만원대의 방음벽을 설치할 수밖에 없었다. 한 단원은 귀엣말로 “‘베란다 항의 시위’가 있을 때 반 단장은 아무 말도 못하고 쭈그리고 앉아 있었다”며 “집에서 주로 벌거벗고 연습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반 단장은 눈이 동그래지면서 “노총각을 그렇게 모함하지 말라”며 손을 내저었다.

그는 네살 때부터 바이올린을 배웠다. 서울시향 단원을 스승으로 모셨는데 연습량이 모자라면 주먹으로 얼굴을 마구 맞곤 했다.

“그때는 그렇게 무서울 수가 없었는데, 요즘 텅 빈 집에서 혼자 연주하노라면 자꾸 그 선생님의 속 정(情)이 생각나서 콧날이 시큰해질 때가 있어요.”

그는 부모님의 권유로 대학과 대학원에서 경영학을 전공하면서 음악과 멀어져 갔지만, 선율에 대한 열정을 참을 수가 없었다. 고교 때 4인조 쿼텟을 만들어 활동해오던 친구 김용범씨와 함께 ‘카페’를 만들게 됐다. 서울대 음대, 러시아 하바로프스크 예술대학(서울캠퍼스) 등을 찾아다니며 바이올린을 쉬지 않고 연마했다. 현재 경기 성남시 분당심포니오케스트라 단원이기도 하다. 하루도 쉬지 않고 연습하는 음악광이라서 정말 “악단과 결혼한 것 같다”는 생각을 갖게 한다.

그의 아파트를 한번 둘러보면 그릇, 가구 등에 무언가 윤기가 빠져 있어 다소 허전하다. 그런 ‘윤기 부재(不在)’를 지적하면서 “정말, 진짜, 결혼할 생각이 없느냐?”고 다그쳐 묻자 그는 슬며시 웃으면서 말했다. “왜요. 저도 결혼해야죠.”

<권기태기자>kk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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