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둑]이창호 중국 진출 역풍 만났다

  • 입력 2001년 11월 4일 19시 16분


이창호 9단의 중국 바둑 리그 진출이 난항을 거듭하고 있다. 한국기원이 이 9단의 중국 진출에 대해 공식적으로 ‘안된다’는 태도를 표명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한국기원은 지난달 30일 상임이사회를 열고 “이 9단의 중국 진출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공식 입장을 발표했다. 문구 자체는 ‘바람직하지 않다’지만 실제 의미는 ‘진출을 승인할 수 없다’는 것.

당시 이사회에 배석했던 바둑 관계자는 “이 9단이 중국 진출을 강행하면 ‘제재 조치도 고려할 것’이라는 강경한 발언도 있었다”고 전했다.

상임이사회는 세계 1인자인 이 9단이 중국에 진출할 경우 국내 기전의 공동화 현상이 나타나고 세계 바둑의 중심무대가 한국에서 중국으로 옮겨질 수 있다는 점을 들어 ‘진출 불가’를 결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기원은 이에 따라 기사 출신 상임이사와 기사회장 등을 통해 이 9단에게 중국 진출을 자제해달라는 설득 작업을 펼칠 예정이다.

한국기원 홍태선 사무총장은 “한국기원이 주최하지 않는 대회에 참가할 경우 한국기원의 승인을 받기로 돼있다”며 “절차상 이 9단에게 잘못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한국기원의 결정에 따라주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한국기원 한 관계자는 “올해초 한국 기사들이 중국 바둑리그에 대거 진출할 때 명확한 기준을 만들지 못해 이같은 문제가 발생한 것”이라며 “늦은 감은 있지만 상금랭킹 5위 이내 기사의 외국 바둑리그 진출 금지 등 관련 규정을 만들 것”이라고 말했다.

중국 저쟝(浙江)팀과 사실상 계약을 맺은 이 9단은 이사회의 ‘진출 불가’ 결정에 당혹스러워하고 있다.

이 9단은 “한국기원으로부터 상임이사회에서 문제없이 통과될 것이라고 얘기들었는데 완전히 다른 결정이 내려져 어리둥절하다”며 “기원으로부터 구체적인 얘기를 듣지 못해 할 말이 없다”고 조심스럽게 말했다.

하지만 이 9단과 친한 기사들에 따르면 연초 10여명의 기사들이 나갈 때는 아무 말이 없다가 자신이 나갈 때 국내 기전 부실화 등을 이유로 못나가게 하는 것은 납득할 수 없다고 반발하고 있다는 것.

문제는 이 9단이 중국 진출을 강행할 경우다. 한국기원이 이 9단에게 징계를 내릴 수도 있지만 그럴 경우 파문은 엄청날 것이다.

또 중국 측을 납득시키는 것도 쉽지 않다. 이 9단의 중국 진출 소식이 알려지자 중국 신문과 TV는 대대적으로 이 사실을 보도해 이미 중국 바둑팬들에겐 기정사실화된 상태.

만약 이 9단은 중국을 가고 싶어 하는데 한국기원이 막는다는 소식이 알려지면 한중 바둑계의 관계에 금이 갈 가능성이 높다.

<서정보기자>suhcho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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