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기원은 지난달 30일 상임이사회를 열고 “이 9단의 중국 진출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공식 입장을 발표했다. 문구 자체는 ‘바람직하지 않다’지만 실제 의미는 ‘진출을 승인할 수 없다’는 것.
당시 이사회에 배석했던 바둑 관계자는 “이 9단이 중국 진출을 강행하면 ‘제재 조치도 고려할 것’이라는 강경한 발언도 있었다”고 전했다.
상임이사회는 세계 1인자인 이 9단이 중국에 진출할 경우 국내 기전의 공동화 현상이 나타나고 세계 바둑의 중심무대가 한국에서 중국으로 옮겨질 수 있다는 점을 들어 ‘진출 불가’를 결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기원은 이에 따라 기사 출신 상임이사와 기사회장 등을 통해 이 9단에게 중국 진출을 자제해달라는 설득 작업을 펼칠 예정이다.
한국기원 홍태선 사무총장은 “한국기원이 주최하지 않는 대회에 참가할 경우 한국기원의 승인을 받기로 돼있다”며 “절차상 이 9단에게 잘못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한국기원의 결정에 따라주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한국기원 한 관계자는 “올해초 한국 기사들이 중국 바둑리그에 대거 진출할 때 명확한 기준을 만들지 못해 이같은 문제가 발생한 것”이라며 “늦은 감은 있지만 상금랭킹 5위 이내 기사의 외국 바둑리그 진출 금지 등 관련 규정을 만들 것”이라고 말했다.
중국 저쟝(浙江)팀과 사실상 계약을 맺은 이 9단은 이사회의 ‘진출 불가’ 결정에 당혹스러워하고 있다.
이 9단은 “한국기원으로부터 상임이사회에서 문제없이 통과될 것이라고 얘기들었는데 완전히 다른 결정이 내려져 어리둥절하다”며 “기원으로부터 구체적인 얘기를 듣지 못해 할 말이 없다”고 조심스럽게 말했다.
하지만 이 9단과 친한 기사들에 따르면 연초 10여명의 기사들이 나갈 때는 아무 말이 없다가 자신이 나갈 때 국내 기전 부실화 등을 이유로 못나가게 하는 것은 납득할 수 없다고 반발하고 있다는 것.
문제는 이 9단이 중국 진출을 강행할 경우다. 한국기원이 이 9단에게 징계를 내릴 수도 있지만 그럴 경우 파문은 엄청날 것이다.
또 중국 측을 납득시키는 것도 쉽지 않다. 이 9단의 중국 진출 소식이 알려지자 중국 신문과 TV는 대대적으로 이 사실을 보도해 이미 중국 바둑팬들에겐 기정사실화된 상태.
만약 이 9단은 중국을 가고 싶어 하는데 한국기원이 막는다는 소식이 알려지면 한중 바둑계의 관계에 금이 갈 가능성이 높다.
<서정보기자>suhcho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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