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론마당]이재웅/하이닉스 자구노력만이 살 길

  • 입력 2001년 11월 7일 20시 22분


하이닉스 채권단은 오랜 진통 끝에 지난달 31일 신규자금 지원 및 부채의 출자전환을 골자로 하는 회생방안을 확정했다. 이에 따라 채권금융기관들은 약 3조1000억원의 하이닉스 부채를 출자로 전환하고 신규자금 6500억원을 추가 지원해서 유동성 위기에 몰려 있는 하이닉스반도체의 경영을 정상화하기로 했다.

이번 하이닉스 구제 조치는 지난 1년여 동안 지지부진해온 기업 구조조정의 큰 틀이 마련된 것으로 최근 ‘기업구조조정촉진법’이 발효된 데 힘입었다고 본다. 그러나 더 근본적으로는 하이닉스가 파산할 경우, 그렇지 않아도 침체에 빠진 우리 경제와 금융시장에 미칠 엄청난 충격을 채권은행들과 감독당국이 우려했기 때문이라고 하겠다.

그동안 금융 및 기업 구조조정 문제만 나오면 시장원리주의자들은 부실기업과 부실채권을 안고 있는 금융기관들을 시장원리에 따라 퇴출시키거나 파산시켜야 한다고 목청을 높여왔다. 옳은 이야기다. 그러나 영업이익으로 이자도 갚지 못하는 부실기업들이 40%가 넘는데 이들을 모두 퇴출시키고 이들에게 돈을 빌려준 부실 금융기관들을 모두 넘어지도록 내버려둔다면 우리 경제에 무엇이 남겠는가. 이러한 딜레마를 안고 있기 때문에 구조조정은 역시 더 현실적일 수밖에 없는 것 같다.

하이닉스가 이번 정상화조치에 힘입어 일단 회생하면 그동안 기업 구조조정의 지연으로 우리 경제 및 증시에 상존해온 주요 불안요인이 상당 부분 해소될 것 같다. 금융시장의 자금경색도 다소 완화될 것이다.

그동안 하이닉스의 구제와 지원에 대해서는 견해가 엇갈려왔다. 이번의 구제조치도 불가피한 것이지만 문제점도 적지 않다. 우선 앞으로 세계 반도체 가격이 어떻게 될지 전망이 불투명하다. 반도체 가격이 조속히 회복되지 않는다면 하이닉스는 또다시 부실화할 우려가 있다. 반도체 시장의 수급 불균형이 계속될 경우 선진국과의 통상 마찰도 심화될 전망이다. 그렇지 않아도 선진국들은 최근 철강제품, 반도체 수출 등에 대해 보호무역주의 압력을 강화하고 있다. 이번 하이닉스의 구조조정뿐만 아니라 산업은행의 회사채 신속 인수제와 관련해서도 선진국들에서는 특정기업을 구제하기 위한 것이 아니냐는 논란이 일고 있다. 그러나 이번 구제조치는 각 채권은행의 상업적 판단과 선택에 따라 이루어졌다.

앞으로 구조조정을 주도한 채권금융기관들과 증시, 그리고 하이닉스반도체가 모두 정상화하는 길은 궁극적으로 하이닉스가 이번 구제조치를 통해 확실하게 회생하는 것이다. 하이닉스는 스스로 자산 매각, 조직 통폐합 등 구조조정을 실효성 있게 지속해야 한다. 또한 기술을 개발하고 경쟁력을 높이는 것도 중요한 과제다. 부단한 자구노력만이 하이닉스의 회생을 담보할 것이다. 하이닉스에 대한 금융지원은 이번이 마지막이라는 채권은행의 경고를 이번에는 더 진지하게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이재웅 (성균관대 부총장·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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