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이광형/기술자가 없는 나라

  • 입력 2001년 11월 7일 20시 22분


나는 한때 왜 우리나라는 후진국이 되었는가 하는 질문에 집착한 적이 있었다. 많은 나라 중 왜 하필 이 땅에 태어났는가부터 시작해 어쩌다가 나의 조국 대한민국은 약소국이 되었는가 생각하게 되었다. 약소국이 된 이유는 여러 가지다. 그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이 기술부족이었다.

그러면 왜 기술이 없었는가 물어보면 우수한 기술자가 없어서 그랬다. 또 다시 물어보면 기술자를 천시했기 때문이다. 조선시대 기술자들이 “자식에게는 기술을 물려주지 않겠다”고 말하며 죽어갔다니 기술이 발달할 리가 없었다. 기술이 없으니 물건도 못 만들고, 무기도 못 만드는 등 속수무책이었다. 그 결과 우리는 나라를 빼앗기는 고초를 겪었고 나라가 분단되는 설움도 겪고 있는 것이다.

2002학년도 대학입시를 위한 수학능력시험이 있었다. 그런데 이번 수능시험 응시학생들의 계열 분포는 이 나라가 조선시대로 회귀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전체 73만8000명의 응시자 중 자연계 학생이 27%인 19만9000명이고 인문사회계 학생이 56%인 41만6000명이라고 한다. 나머지가 예체능계로 16%인 12만3000명이다. 인문계 시험을 보고 자연계로 진학하는 교차지원 학생이 있지만 그 비율은 무시할 수 있는 정도다.

국가재건을 외치며 기술드라이브정책을 펴던 1970년대에는 대학입시에서 자연계열 응시자가 단연코 많았다. 그 덕분에 많은 우수 인력이 이공계로 진출했다. 그래서 이들이 40, 50 대가 된 오늘날, 반도체 자동차 선박 등 수출상품을 만들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1990년대가 되면서 상황이 바뀌기 시작했다. 과학기술자에 대한 처우가 신통치 않고 자연계로 가면 고생만 한다는 인식이 확산되면서 자연계 학생이 줄기 시작했다. 그래서 1994년에는 인문계와 자연계가 45%로 같아졌고 예체능계는 8.8%였다.

그 후 자연계는 43, 42, 43, 42, 39, 34, 29%로 매년 평균 2%씩 줄었다. 반면 인문계는 1.2%씩, 예체능계는 0.9%씩 증가했다. 그래서 급기야 자연계 학생이 4분의 1이 되는 상태까지 오고 말았다. 이런 현상은 당분간 계속될 것이다. 내년에는 자연계 학생이 25%, 그 다음에는 23, 21, 19, 17%로 줄어들 것이다.

현대사회를 기술패권주의 사회라고 말하기도 한다. 기술이 없는 국가는 그야말로 할 수 있는 것이 거의 없다. 경제 국방 문화 어느 것 하나 자주적으로 영위해 나갈 수 없다. 제품은 기술자의 손과 머리에 의해 만들어지고 그 위에 서비스나 문화를 덧붙여 부가가치를 높일 수 있다. 다시 말해 일단 제품을 만드는 사람이 있어야 그 후에 3차산업의 부가가치를 올릴 수 있다는 말이다.

현재 학생들의 진로 성향을 보면 10∼20년 후의 국가인력구조를 알 수 있다. 인구의 4분의 1만이 제품 만드는 일에 종사하고 나머지는 그 위에 살을 덧붙이는 인문 예술분야에 종사할 것이다. 이렇게 되면 이 나라는 어떻게 될까. 인구의 50% 이상이 제품 만드는 일에 종사하는 다른 나라와 경쟁할 수 있을까.

더욱이 사회에서 요구하는 인력을 조사해보면 약 3분의 2가 자연계 전공자이다. 현재 대학졸업자의 구직난이 심각하다고 하지만 회사에서는 원하는 인재를 구하지 못해 어려움을 겪고 있다. 사회에서 원하는 분야를 교육시키지 못한 결과다. 현재와 같이 4분의 3이 인문계와 예술계로 진출하면 그들의 직장은 어디에 있을까.

더 늦기 전에 대책을 세워야 하겠다. 이대로 방치하면 앞날이 너무 어둡다. 일부 뜻 있는 사람들이 어린이들에게 과학도서를 선물해 과학의 꿈을 갖게 하자는 ‘사이언스북 스타트운동’을 벌이고 있긴 하지만 이것으로는 역부족이다.

자연계로 가면 공부가 힘들고 점수가 안나오는데 반해 인문계나 예체능계로 가면 점수가 잘 나온다는 말도 있다. 뭔가 균형이 깨졌다는 뜻이다. 학생들이 자연계 진출을 꺼리는 이유를 조사해 그에 상응하는 유인책을 세워야 한다. 정부의 역할이란 필요하지만 잘 안 되는 것을 잘 되게 하는 것이다.

이광형 (KAIST 미래산업 석좌교수·본보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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