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스커버리 총서의 장점은 뭐니뭐니 해도 한 쪽도 거르지 않고 들어가는 사진이나 그림에 있다. 시리즈 109번째 ‘나폴레옹-나의 야망은 컸다’를 펼쳐보자. 검정 바탕에 크고 굵은 흰색 글씨로 “나는 무질서의 깊은 수렁을 막고 혼돈을 정리했다. 나는 프랑스 대혁명의 훼손을 막고, 민중의 지위를 향상했으며, 왕권을 굳건하게 만들었다…”는 나폴레옹의 독백과 삽화가 10쪽에 걸쳐 나온다. 이처럼 파격적인 디자인 덕분에 어쩌면 식상했을 나폴레옹 이야기가 아주 새롭게 들린다.
프랑스 갈리마르사가 포켓판 백과사전 ‘디스커버리 총서’를 출간하면서 내건 광고문구가 “첫 페이지부터 마지막 페이지까지 이렇게 많은 것을 본 적이 없었다”였다. ‘잊혀진 이집트를 찾아서’ ‘문자의 역사’ ‘피카소’ ‘그리스 문명의 탄생’ ‘마야’ ‘프로이트’ ‘재즈’ 등 문화유산, 전설, 역사적 사건 등을 주제별로 다루면서 풍부한 도판과 함께 초보자도 쉽게 접근할 수 있는 평이한 문장, 본문에 버금가는 꼼꼼한 사진설명으로 마치 한 편의 다큐멘터리를 보는 듯 편집했다. 본문에서 못다한 설명이나 자료들은 맨 뒤 ‘기록과 증언’에 실려 있다. 알차다 못해 질릴 만큼 꼼꼼한 책이다.
시공사는 150만부 돌파 기념으로 11월1일부터 12월20일까지 20% 할인판매를 한다. 시리즈 수집가들에게는 이 빠진 부분을 채워넣을 좋은 기회.
‘시공 디스커버리 총서’에 이어 지난해 7월 선보인 창해 ABC북도 어느새 40권째를 돌파했다. ABC북도 디스커버리 총서와 마찬가지로 주제별 작은 백과사전이다. 프랑스 플라마리옹 출판사의 시리즈를 번역한 것으로, 첫 권 ‘반 고흐’에 이어 ‘인상주의’ ‘상징주의와 아르누보’ 등 주로 화가와 작품을 다룬 책이 강세다. 특히 지난해 10월부터 올해 2월까지 덕수궁 현대미술관에서 열린 오르세미술관 전시회가 관람객 30만명이라는 대기록을 세웠을 때 ABC북 중 ‘오르세미술관’편은 없어서 못 팔 정도였다. 미술 분야 외에도 고고학과 문명, 문화유산, 역사, 종교, 문학, 과학, 생활의 지혜(시가, 꿀, 위스키, 자전거), 자연, 스포츠 등 시리즈가 다루는 주제에 제한이 없다.
89년부터 지금까지 245종을 기록한 대원사의 ‘빛깔 있는 책들’ 시리즈와 ‘시공 디스커버리 총서’ ‘창해 ABC북’까지 작은 백과사전들이 각자 특징적인 편집으로 경쟁하고 있어 독자들에게는 골라 읽는 즐거움이 더하다. 여기에 최근 50권을 돌파한 ‘책세상문고, 우리시대’ 시리즈를 더한다면 지식의 지평은 더욱 넓어질 것이다.
지난해 4월 탁석산의 ‘한국의 정체성’을 시작으로 50권째 고미숙의 ‘한국의 근대성, 그 기원을 찾아서’까지 ‘책세상문고’는 처음부터 논쟁을 즐겼다. 200쪽이 채 안 되는 이 작은 책은 참신하고 시의성 있는 주제들(다이어트의 성정치, 춘향의 딸들 한국여성의 반쪽짜리 계보학, 따로 끼리 남성지배문화 벗기기 등)로 독자들을 토론의 장에 끌어들였다. 박사급 이상의 전공자와 소장학자들이 펼치는 설익은 듯하지만 도발적인 주장이 학계에 신선한 자극이 되었음은 물론이다. 너나할것없이 인문학의 위기를 말하는 시대에 인문학 문고의 출현은 젊은 인문학도들에게 큰 격려가 되기도 했다. 제41회 한국백상출판문화상 수상, 동아일보 선정 ‘인문사회과학 분야 올해의 베스트셀러’, 문화일보 선정 ‘분야별 올해의 책’ 등 상복도 많았다. 50권 돌파 기념으로 펴낸 ‘서평집’(김성기 외 47인 지음)은 논쟁의 완결이 아니라 또 다른 시작이다. 제2의 문고 전성시대 만세!
시공 디스커버리 총서/ 시공사 펴냄/ 각 7000원
창해 ABC북/ 창해 펴냄/ 각 9000원
책세상 문고, 우리시대/ 책세상 펴냄/ 각 3900~4900원
< 김현미 주간동아기자 > khmzip@donga.com
◇ Tips
'빛깔 있는 책들' : 시공 디스커버리 총서나 창해 ABC북이 프랑스 출판물의 번역인 데 반해 대원사의 '빛깔 있는 책들' 시리즈는 순수하게 한국 전통적인 아이템을 가지고 국내 필자와 사진작가가 만든 책이다. 1989년 6월부터 매달 두 권꼴로 지금까지 245종을 펴냈다. 최근 출간한 시리즈는 '한국의 읍성' '다비와 사리' '한국의 황제'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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