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신연수/우왕좌왕 산자부

  • 입력 2001년 11월 13일 18시 38분


중국의 세계무역기구(WTO) 가입에 대해 한국은 손뼉만 칠 상황이 아니다.

많은 분야에서 한국의 산업 경쟁력은 이미 중국에 추월당했거나 추월당할 위기에 놓여 있다. 몇 년 전만 해도 싼 임금을 무기로 저가 제품을 쏟아내던 중국은 최근 외국 자본과 선진 기술을 흡수해 급속한 고도산업화를 이루고 있다.

“그동안 한국은 무얼 했느냐”는 의문이 절로 드는 시점이다. 그런데도 아직 정부의 인식과 대비는 안일하기만 하다. 중국의 WTO 가입으로 섬유 전자 자동차 등의 수출이 크게 늘어나리라는 등 장밋빛 전망만 내놓고 있다.

전문가들의 견해는 다르다. 중국의 대한(對韓) 수출은 더 빠르게 늘어나 양국의 무역수지는 곧 확대 균형, 나아가 한국의 적자까지 예상된다는 것이다.

수출경쟁력 향상과 산업고도화를 지휘해야 할 산업자원부는 8월에야 ‘중국시장 활용대책반’을 만들었다. 담당 간부는 “중국의 WTO 가입이 올 초에 확정됐는데 이만하면 훌륭하게 대처한 것 아니냐”는 반응이다. 문제는 수출경쟁력 향상이 하루아침에 이뤄지는 게 아니라는 데 있다.

산자부는 요즘 반도체 협력단을 중국에 파견하고 전자상거래 협력을 본격 추진하는 등 부산하게 움직이고 있다. 국책 연구기관들은 갑자기 온갖 부처에서 중국 프로젝트나 세미나를 하라는 통에 “몸이 10개라도 모자란다”고 볼멘소리다. 산자부의 한 관계자는 “솔직히 중국의 반도체산업이 이처럼 빨리 발전할 줄 몰랐다”고 실토하기도 했다.

1994년 한중 정상회담을 계기로 정부는 항공기 자동차 고선명TV 전전자교환기 등 4대 산업에서 중국과 협력을 추진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들 분야에서 협력이 제대로 이뤄진 것은 없다. 이제 중국 문제가 발등의 불이 되고 보니 뒤늦게 새로운 분야에서 또다시 협력을 추진한다는 것이다. 한국이 우왕좌왕하는 사이 선진국들은 이미 중국 곳곳에 진출해 버렸다.

이렇게 근시안(近視眼)이어서야 정책 목표가 달성될 리 없을 것이다.

신연수<경제부>ysshi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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