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틀이부부의 세계 맛기행]폴란드 최고의 레스토랑 'Gessler'

  • 입력 2001년 11월 14일 13시 56분


폴란드에서 현지 여행 가이드를 아르바이트로 하고 있는 유학생을 만났었습니다. 한국 음식 구하기 쉽지 않은 폴란드에서도 라면이나 소주 같은건 집에다 재어 놓고 먹는다더군요. 어떻게 하면 그렇게 할 수 있냐 물었죠. 연세 지긋하신 어르신들로 구성된 관광단 가이드를 할 때 버스 앞에서 마이크를 잡고 이렇게 이야기한대요.

"어머님, 아버님, 한달 내내 햄버거만 드셔 보셨나요~ ('목마른 사슴이 물을 찾듯~' 말투)"

그러면 바로 가방에서 바리바리 싸오신 컵라면이며 통조림이며 소주를 있는대로 다 내주신다는군요. 심지어는 연필 사라고 만원짜리 쥐어주시고 가시는 분도 계신대요.

저희도 맨날 맛있는거 먹었단 이야기 할게 아니라 바게트빵 뜯고 있는 불쌍한 모습을 보여드리면 좀 효과를 볼런지... ^^;

농담이 아니라 살인적인 물가의 북유럽에선 정말로 햄버거조차도 비싸서 제대로 못먹겠더라구요. 맥도날드 빅맥 세트가 만원이 넘는다니까요. 명색이 음식에 관한 글을 쓰고 다니는 사람들이 제대로 된 레스토랑에서 밥 한번 먹어보는게 소원이라니 이 얼마나 불쌍한 상황이었겠습니까. (오늘은 계속 이쪽으로 강조를... 흐흐) 그러다보니 물가 싼 동유럽에 들어갈 날을 손꼽아 기다리게 되었습니다.

드디어 벼르고 벼르던 동유럽의 첫번째 나라 폴란드에 들어왔습니다. 바르샤바 구 시가 광장을 서성거리다가 겉보기 근사한 레스토랑이 있어서 살짝 들여다보니 유명인사들의 사진이 다닥다닥 붙어있는 것이었습니다. '부시 전 미국 대통령, 카스트로 쿠바대통령, 힐러리 등등' 알만한 사람들의 사진이 붙어 있고 그 옆에는 '이 레스토랑에 왔다 갔음'하고 써있는게 아니겠습니까.

설마담 : "햐~ 유명한 집인가보다. 우리도 들어가 볼까?"

홍대리 : "비쌀텐데..."

설마담 : '뭐 그동안 매일 바게트 먹고, 샌드위치 먹고 해서 돈도 많이 아꼈는데 한끼 먹자!"

홍대리 : "그래도... 너무 비싸지 않을까?"

설마담 : (문앞의 메뉴를 죽 훑어보고) "좀 비싸긴 한데 그래도 폴란드 전통음식 파는 곳이고 오래된 이름난 레스토랑이니 그 정도는 하겠지"

홍대리 : (잦아드는 목소리로) "그냥 허름한데 가도 폴란드 음식은 먹을 수 있는데..."

설마담 : "그런덴 맛이 없잖아. (째려보며) 그래서, 안 들어갈꺼야?"

홍대리 : "거의 이틀치 숙박비가 깨질텐데..." - 끝까지 일관된 태도를 보인다.

설마담 : "몰라. 나혼자라도 간다." - 역시 일관된 태도를 보인다.

홍대리 : "여보 혼자만 먹을 수는 없지... 그럼 기차에서 하루 자는 걸로 하지 뭐.'

이런 실갱이끝에 들어가게 된 그곳은 100년의 전통을 자랑하는 'Gessler'란 이름의 레스토랑이었습니다. 1층과 지하층에 각각 컨셉이 다른 공간이 있었는데, 우리가 들어간 지하층 쪽은 전통적인 폴란드식 부엌을 그대로 옮겨 놓은 듯한 독특한 인테리어로 실내를 꾸며놓았더군요. (꾸며놓은게 아니라 100년 전 모습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는거라고 해야할까요?) 저희는 신기해하며 이리저리 둘러보고 약간은 어둡고 아늑한 분위기의 안쪽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옆에선 어느 잡지사에서 취재나온 듯한 일본사람들이 조명까지 설치해놓고 사진을 찍고 있더라구요.

그리고는 앉아서 메뉴판을 펼쳐보니 좀 난감하더군요. 사실 폴란드 요리는 별로 공부한 것도 없어 깜깜 무식인데다가 밑에 영어로 설명이 되어있는데도 그 이름들은 하나같이 왜그리 길고도 어려운지. 고민을 거듭한 끝에 결국 저희가 주문한 음식은 총 4가지.

전채로는 'Sledz po Polsku"와 'Staropolski Zurek'을 주문했고 메인으로는 'Golabki Dobrze Nadziane'와 'Zrazy Z Pietek Malych w czarnym chlebie z kasza Gryczana'를 골랐습니다. 호호, 당황스럽죠? 한글 발음으로 쓰는건 저희 능력상 불가능해서 생략합니다. 음식 이름에 대해서는 다시 핵심단어만 알려드릴테니 너무 긴장하진 마시구요.

첫째, 전채 요리로 홍대리가 고른(찍은) 'Sledz po Polsku'는 폴란드식 청어 샐러드라는 뜻으로 훈제한 청어(영어로 Herring)로 만든 샐러드입니다. 사실 영어제목에서 Herring이 뭔지 몰라 대충 시켰는데 생선이 들어간 샐러드가 나오다니! 아무리 훈제를 했다지만 생선 비린내가 좀 나는 듯했고 생선 자체도 짜고 허벅거려서 맛이 별로 없었습니다. 그저 곁에 나온 양파만 주워먹고 말았죠. 이 비싼 음식을... 흑흑.

둘째, 설마담이 먹은 전채는 폴란드의 대표적인 수프인 'Zurek'으로 시큼한 맛을 내는 따뜻한 수프에 하얀 소세지가 들어간 것이있습니다. 맨날 퍽퍽한 바게트만 먹다가 오랜만에 먹는 거부감없는 국물이 참 좋더라구요.

셋째, 홍대리가 먹은 메인은 'Golabki'라는 전통요리로 잘 양념한 돼지고기를 양배추로 싸서 익히고 그 위에 맛깔스런 소스를 끼얹은 것입니다. 달달한 양배추속에 돼지고기맛이 잘 살아있어서 우리 입에도 아주 잘 맞는 요리더라구요. 두 덩어리밖에 안되지만 의외로 양도 푸짐해서 홍대리가 먹고 나서 아주 뿌듯해했죠.

넷째, 설마담이 먹은 메인은 이름이 무지하게 긴데(다시 쓰기도 힘들어요) 풀이하자면 '갈색빵에 담긴 훈제 돼지고기 수프와 통밀볶음'정도가 될 것 같네요. 이 요리가 오늘 먹은 것 중에 가장 압권이었던 것으로 커다란 빵의 속을 들어내고 거기에 고기맛이 푹 우러난 국물을 담고 맛이 고루 스며든 훈제 돼지고기를 넣은 것입니다. 이 국물과 고기를 한입 떠서 베어 물고 옆에 곁들여진 통밀 볶음을 한 스푼 먹고 우물거리면 '형용할 수 없는' 오묘한 맛이 나더군요. 걸쭉하고 뭉근한 국물이 완전히 진국이더라구요.

아, 하지만 문제는 그 다음이었죠. 계산서를 받고 보니 정말 만만치 않아서 거의 파리의 레스토랑 수준이더라구요. 하지만 비싼 값을 하는 음식을 먹은 탓에 그저 군소리 없이 얌전히 카드를 내밀었더니 그날따라 카드가 안된다는 겁니다. 그래서 어쩝니까. 처음에 먹자고 우긴 설마담이 밖에 나가 근 30분을 헤매서 현금을 뽑아 와야 했었답니다.

☞ 어디서 먹나요?

「폴란드 전통요리들」 오늘은 폴란드 전통 음식점인 'Gessler'를 소개해드리려고 한 참이니 이 집의 위치를 알려드릴께요. 바르샤바에서 주요 볼거리가 몰려 있는 구시가의 중심 구시가광장을 남쪽에서 들어가다 보면 왼쪽에 있습니다. 유명 인사들이 많이 찾아올만큼 굉장히 많이 알려진 집이라 웬만한 여행책자에 다 나와있을거예요.

☞ 가격

말씀드렸죠? 유명한 만큼 동유럽 물가 치고 상상을 초월한답니다. 위에서 이야기한 전채 두개, 메인디쉬 두개, 음료수(콜라) 포함해서 총 168즐로티(폴란드 1즐로티=한화 약 330원)

웨이터들이 영어를 잘해서 주문하는데에도 별 어려움이 없을겁니다. 문제는 이 기나긴 이름들 속에서 무얼 먹을건지 결정해야하는 것, 그리고 구멍난 예산을 메우기 위해 이 물가 싼 나라에서 또다시 바게뜨를 뜯어야 한다는 것이죠...

이틀치 숙박비 먹어치우고 바게뜨 대신 노숙을 해볼까 생각중인 꿈틀이부부.

☞'꿈틀이부부 세계여행' 홈페이지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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