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이 희망이다]호주-뉴질랜드 학생회 "민주주의 몸소 체험"

  • 입력 2001년 11월 16일 18시 07분


점심 시간이 되자 호주 시드니 하코트초등학교의 6학년 교실에 생기가 돌기 시작했다. 사과와 샌드위치 등 점심을 손에 든 1학년생부터 6학년생까지 각 반을 대표하는 34명의 학생들이 하나 둘씩 교실로 모여들었다. 학생회 회의가 있는 날이기 때문이다.

학생회 회장인 6학년 앤지아(12·여)가 “지금부터 회의를 시작할 테니 조용히 해달라”며 손뼉을 서너번 치자 재잘거리던 학생들이 갑자기 조용해졌다.

“다음주 월요일에 있을 ‘행운권 추첨 행사’를 위해 티켓을 판매하는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회의를 소집했습니다.”

앤지아는 전교생에게 행운권을 한장당 50센트씩 받고 판매한 뒤 행운권을 뽑는 학생 한명에게 학생회가 마련한 ‘불독 인형’을 선물로 줄 계획이라고 밝혔다.

그러자 학급대표들은 “야호”하며 환호성을 질렀고 “표는 팔아야 하느냐” “값을 더 받으면 안되느냐” “왜 한명만 상을 주느냐”는 등의 질문이 쏟아졌다.

앤지아는 질문에 자세히 답한 뒤 “행사의 목적이 큰 돈을 벌기 위한 것이 아닌 만큼 절대로 1달러 이상을 받아서는 안된다”고 당부했다.

저학년 학생들이 회의 중간에 자꾸 끼어들어 회의가 진전되지 못하자 지도 교사가 “의견이 있으면 손을 들고 회장의 허락을 받고 이야기하라”고 조언했다. 그러자 그 학생은 얼굴이 벌개지며 “미안하다”고 사과했다.

학생회는 이런 행사를 통해 얻은 수익금을 모았다가 학부모협의회(P&C)와 공동으로 시골 오지의 어린이들을 초청해 시드니 구경을 시켜주거나 사회보호시설인 ‘스튜워트 하우스’에서 이 학교를 다니고 있는 동료 어린이를 돕는데 쓰고 있다.

학생회가 주관하는 ‘머프티 데이(Mufti Day)’나 디스코 파티는 학생들이 가장 좋아하는 행사 중의 하나다. 머프티 데이는 교복을 입지 않고 사복 차림으로 학교에 나오는 대신 학생회에 50센트에서 1달러의 기부금을 내는 행사다. 매일 교복만 입는데서 오는 싫증도 풀어주고 봉사하는 정신을 길러주는 일석이조의 효과가 있다고 한다. 올해는 이런 행사들을 여러차례 열어 350달러를 모았다.

학급대표는 학년초에 반별로 2명씩, 학생회장은 전교에서 1명씩을 투표로 선출한다. 학생회는 학생들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학교에 건의할 것은 없는지 등을 파악해 전달하고 해결하기 때문에 ‘교내 의회’로도 불린다.

이 학교 워런 노먼 교장은 “학생회 활동을 통해 학생들이 스스로 일을 조직하고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을 기를 수 있는 좋은 기회”라며 “대화를 통해 상대방을 설득하고 회의진행 방법, 선거 절차 등도 배울 수 있어 민주시민 교육에 꼭 필요하다”고 말했다.

뉴질랜드 크라이스처치의 파파누이고교는 전교생 중 남녀 학생 1명씩을 ‘대표학생(Head Student)’로 임명한다. 학교 생활이나 태도, 옷차림 등 여러 가지 면에서 다른 학생들에게 모범이 될만한 학생을 뽑는다.

대표학생은 교내외 공식 행사에서 학교를 대표하고 매주 교장, 학생회장 등과 교내에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를 항상 파악하고 학교 행사를 기획하기도 한다. 학생회가 학급과 교내의 일을 처리하는데 비해 대표학생들은 학교를 대표하는 ‘얼굴’역할을 많이 한다.

대표학생들은 학생회 취미클럽 등 교내의 학생기구들이 갖고 있는 관심사와 애로사항을 파악해 교장에게 알려준다. 또 매주 한차례 교장과 모임을 갖고 있으며 이런 활동 상황은 일일이 모니터링돼 학교 소식지와 홈페이지에 자세히 소개된다.

한국인 유학생 김지연양(19)은 “대표학생들은 책임감이 강하고 공부나 학교생활에서 모범적인 학생들이 뽑힌다”며 “한국에서는 학생회장이 형식적으로 있지만 뉴질랜드에서는 적극적으로 일하고 학생들도 대표학생을 진심으로 존중한다”고 말했다.

데니스 피야트 교장은 “대표학생도 학생회와 협력해야 하는 자치활동기구의 하나”라며 “이를 통해 학교라는 작은 사회에서 남을 이끌고 남을 위해 배려할 줄 아는 자세를 배울 수 있다”고 말했다.

▼타마티어고의 학생자치/학생회장도 어엿한 학교운영위원▼

뉴질랜드 내피어의 타마티어고교는 학교운영위원회와 함께 학생회의 활동이 활발하기로 유명하다.

뉴질랜드는 학운위가 학교의 운영방법, 교육과정 등을 실질적으로 움직이는 중심 기구이기 때문에 학운위는 학교 구성원들의 의사를 최대한 반영하려고 노력한다.

학운위는 학부모 대표 5명, 교직원 대표 1명, 학생 대표 1명 등 7명으로 구성돼 있어 학생회장은 매달 학운위 회의에 반드시 참석해야 한다. 학운위원들이 모두 어른이지만 학생이라고 무시하지 않고 똑같은 위원으로 대우한다. 그만큼 학생회 대표의 어깨가 무거울 수밖에 없다.

타마티어고교는 20여명의 학급대표로 구성된 학생회를 구성해 학생 스스로 교내 문제를 논의하고 학교에 건의하도록 하는 장치를 두고 있다.

학생회는 매주 월요일 학급 대표들이 참석한 가운데 회의를 갖는다. 불만사항을 학교측에 전달하기도 하고 학생들이 학교발전을 위해 무엇을 할 것인지를 논의하기도 한다.

지난 학기에는 학생회가 중심이 돼 학교 교복을 바꿨다. 종전의 교복 색상이 너무 칙칙해 학생들의 불평이 많았다. 이를 학생회 안건으로 채택했는데 새로운 디자인으로 바꾸자는 의견이 많아 학운위에 보고했고 학운위도 찬성해 산뜻한 교복으로 교체했다.

학생회장인 레이첼(16·여)은 “학생의 의견이 즉각 반영되기 때문에 학생들의 관심이 높다”며 “학생회장으로 일하는 것에 큰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학생회는 또 학교 주변은 물론 시내 중심에서 ‘음주운전 안하기’ 캠페인을 벌여 학부모들로터 좋은 반응을 얻었다. 최근에는 외국인 유학생들이 많이 입학하고 있어 이들이 학교 생활에 잘 적응하도록 도와주는 일도 하고 있다. 유학생들을 학생들에게 일일이 소개해주고 장학금 혜택 등을 안내해준다.

이 학교 리비 겜멜 교감(여)은 “학생회가 회의를 할 때는 항상 교감이나 지도교사가 배석한다”며 “학생들은 어른들이 미처 생각하지 못한 아이디어를 많이 내고 채택도 많이 된다”고 말했다.

▼히코트초등학교 번스교사▼

“어린 학생들이 하는 학생회이지만 운영 규정이나 절차는 정확하게 지켜야 합니다. 그래야 사회에 나가서도 배운대로 할 것 아닙니까.”

호주 시드니 하코트초등학교의 6학년 담임인 주디 번스 교사(여·사진)는 학생들에게 친절하지만 ‘깐깐한 선생님’으로 통한다. 항상 학생들이 지켜야 할 ‘룰’을 강조하기 때문이다.

번스씨는 학생회가 열리는 날이면 지도교사로 참관해 회의 안건이 어떻게 진행되는지를 지켜보고 회의 진행 방식 등에 대해서도 조언을 한다.

그는 매년 학급 대표들이 선출되면 노란색 파일을 나눠준다. 학생회와 학급회의 진행 절차, 간부구성과 역할, 주의사항, 학생회에 안건을 올리는 방법이나 회의 내용을 학급에 알리는 방법 등을 설명해 놓은 일종의 ‘회의 매뉴얼’인 셈이다.

학생회 회의의 출석상황과 사과 발언은 반드시 회의록에 기록을 남겨야 한다. 서기는 지난번 회의에서 어떤 내용이 토론됐는지 발언록을 읽어주고 그 때 참석한 대표로부터 ‘정확하다’는 동의를 받아야 한다.

번스씨는 “학급 대표는 정기적으로 학급회의를 열어 안건을 논의해야 한다”며 “회의에서 나온 내용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하는 훈련을 하는 것도 학생들에게는 좋은 교육”이라고 강조했다.

“학급회의나 학생회 회의에서 어떻게 행동하는지도 중요합니다. 회장이 지명하지 않으면 절대로 발언을 해서는 안됩니다. 대표들은 학생들의 발언 시간을 조절해 효율적으로 회의를 진행해야 합니다.”

그는 “말하기 전에 한번 더 생각하고 남을 비난하기 보다 건설적으로 비판하는 자세를 갖도록 가르친다”며 “이런 교육을 통해 자신의 생각을 예의바르고 정확하게 전달하는 능력을 기를 수 있다”고 말했다.

번스씨는 “학급대표들은 학급회의에서 결정된 내용을 정확히 알아야지 대충 이해하면 어떤 결과가 온다는 것을 항상 일러준다”며 “학생 자치활동을 통해 남을 대표하는 자세와 요령을 배울 수 있다”고 말했다.

<시드니·크라이스처치〓이인철기자>inchul@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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