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론마당]김병운/한약사 전문성 보장해야

  • 입력 2001년 11월 21일 18시 19분


악몽 같은 한약(韓藥) 분쟁의 수습책으로 1994년에 한약사제도가 신설된 입법 취지는 분명 한약의 전문인력을 양성해 한의학의 운영체제를 바로잡아 보자는 데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제도 신설 당시의 입법과정에서 의도적이었든지, 준비부족 탓인지는 몰라도 많은 미비점과 모순점이 내포됐다. 그 후 줄기찬 시정요구도 묵살하고 방치한 결과, 마침내 한약학과 학생들과 교수들이 비장한 각오로 자진 폐과를 부르짖고 휴업상태에 돌입했다. 이의 시급한 해결 없이는 한의약제도의 앞날에 암운이 드리울 것이다.

한약사제도 신설의 허점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한약사의 응시자격을 규정함에 있어 ‘대학에서 대통령이 정하는 한약 관련 과목을 이수하고 졸업한 자로서 학사학위를 받은 자’로 애매모호하게 표시해 양약을 전공한 약대 졸업생이 ‘계절학기’라는 편법으로 한약사 시험에 응시할 수 있도록 해 한약학과 졸업생의 진로를 막고 있는 것이다. 현행법에 의사 치과의사 한의사 간호사 등 의료인과 약사의 국가응시자격은 전공학과의 대학졸업과 전공과목 학사학위 조항이 명시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유독 신설 한약사의 경우는 전공학과를 의도적으로 빠뜨린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

둘째, 정부는 약사들의 집단이기주의 주장을 관대하게 수용해 새로 배출되는 한약사와 동등한 직능이 허용되는 한약 취급자격 약사를 3만명 가까이 양산했다. 앞으로도 계속해서 약대 졸업생의 이중면허자가 속출할 것이니, 앞길이 막힌 한약학과 학생들의 암담한 심정을 이해하고도 남음이 있다.

셋째, 한약학과 신설이 한약전문인력 양성을 목적으로 한 것이라면 의약 불가분의 밀접한 연관성으로 보아 현존 한의과대학을 한의약대학으로 개편해 여기에 한약학과를 병설하는 것이 올바른 방법일 것이다.

양의약제도에 예속되어 있는 한의약제도의 독립성을 살리기 위해서는 독립된 한의약법의 제정을 서둘러야 한다. 한약사의 국가응시자격을 일반의약인의 경우처럼 전문성을 살리도록 개정함으로써 약사의 이중면허제도를 원천 봉쇄해야 할 것이다. 양약과 한약의 이중면허를 취득했을지라도 전문영역의 확보를 위해 어느 하나만을 선택하고 개설장소를 하나로 규제한다면 쉽게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실제 의사나 약사 면허소지자가 한의학 연구를 목적으로 한의과대학에 학사편입해 소정의 전공과목을 이수하고 한의사면허를 이중으로 취득한 사례가 적지 않다. 그러나 이들은 한·양방을 겸업하거나 약국과 한의원을 겸업할 수 없음이 현실이다.

행정당국은 한약사제도가 한약분쟁의 급박한 국면에서 나왔다 하더라도 이원화된 의약제도의 확립을 위해 한약사의 전문성을 보장하고 이들을 적극 육성하는 것이 시대적 요구임을 깊이 인식해야 한다. 모처럼 탄생한 한약사의 처지가 한약업사(韓藥業士)만도 못한 열악한 사태를 오랫동안 외면하고 방치한 행정당국의 책임이 결코 가볍지 않다는 것을 깨닫고 현명한 수습책을 시급히 강구해야 할 것이다.

김병운(동양의학연구원 이사장·전 경희대 한의대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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