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치로가 일본 오릭스 블루웨이브 시절 7년 연속 타격왕을 차지한 ‘야구천재’라지만 75년 프레드 린에 이어 메이저리그 두번째로 신인왕에 이어 MVP까지 석권하리라고는 누구도 예상 못했던 일.
이치로는 데뷔 첫해인 올 시즌 타격(0.350), 안타(242개), 도루(56개) 등 3관왕에 올랐지만 파워를 선호하는 현대야구에서 거포 제이슨 지암비(오클랜드 어슬레틱스)나 팀동료 브렛 분의 그늘에 가렸던 게 사실. 실제로 ESPN 같은 스포츠전문 채널에선 지암비 특집을 준비해뒀다가 허둥지둥 이치로로 바꾸는 촌극을 빚었고 ‘진정한 MVP는 지암비’라는 칼럼까지 냈다. 장타력 1위(0.660), 출루율 1위(0.477)의 2관왕 지암비는 이를 더한 타자의 종합공격력(OPS)에서 이치로(장타력 0.457, 출루율 0.381)를 무려 3할이나 앞섰다.
표 분석도 이치로가 지암비에 비해 몰표를 받았음을 보여준다. 이치로는 가장 많은 1위표(11개)를 얻었지만 2위표(10개)에선 지암비(1위표 8개, 2위표 11표)에게 뒤졌고 3위표 이하는 거의 얻지 못했다.
그러나 ‘승자’와 ‘패자’는 결과에 깨끗하게 승복했다.
이치로는 “내가 상을 타게 될 줄은 정말 몰랐다”며 “일본에서도 3번 타봤지만 이 곳에서 받은 것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고 기뻐했다.
MVP 2연패를 놓친 지암비도 “탁월한 활약을 한 이치로에게 졌기 때문에 실망스럽지 않다”고 말했다.
한편 이치로의 MVP 선정 소식을 들은 일본에서는 총리가 직접 축하 논평을 할 정도로 열광의 도가니. 도쿄발 AP통신은 고이즈미 준이치로 일본 총리가 “힘든 일이었지만 이치로는 결국 해냈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장환수기자>zangpabo@donga.com
▲이치로 메이저리그 정복 비결▲
‘마법사(Wizard).’
‘마술 같은 공격 능력으로 팀에 공헌한다’고 해서 미국프로야구 시애틀 매리너스의 팀 동료들이 일본인 출신 간판타자 이치로에게 붙여준 별명이다. 과연 이치로는 어떻게 불과 1시즌만에 신인왕에다 MVP(최우수선수)까지 휩쓰는 메이저리그 정복의 마법을 부릴 수 있었을까.
▽발〓이치로가 타격한 뒤 1루에 도달하는 시간은? 시애틀 구단에서 측정한 결과는 3.7초. 초당 7.33m를 달린다는 얘기다. 왼손타자에 빠른 발을 가진 그가 올시즌 때려낸 안타의 30% 정도는 내야안타. 상대팀에선 이치로가 나오면 내야수들이 전진수비하는 ‘이치로 시프트’를 썼지만 그래도 그는 안타를 만들어냈다. 클리블랜드의 유격수 오마 비스쿠엘은 그를 보고 “날아다닌다”며 혀를 내둘렀다.
▽타격 센스〓일본에서 이치로는 타격할 때 오른발을 크게 들었다 끌어당기는 ‘시계추타법’으로 유명했다. 하지만 올 스프링캠프부터 150㎞대의 강속구를 뿌리는 메이저리그 투수들에게 대응하기 위해 ‘시계추타법’을 포기하고 간결한 타법으로 전환해 적응했다. 이를 통해 스윙스피드를 메이저리그 정상급인 147㎞까지 끌어올렸다.
▽어깨〓원래 투수출신인 그의 송구스피드는 135㎞정도. 수비능력이 뛰어난 야수에게 주는 골드글러브상을 받은 건 당연한 결과다.
▽적극성〓올시즌 기록 중에 특이한 게 하나 있다. 톱타자로 157경기에 나가 볼넷으로 출루한 게 겨우 30차례. 그만큼 공격적이었다. 특히 초구 공략시에 타율이 0.442로 가장 높았다.
‘시계추타법’이 바뀐 것을 제외하고 이치로가 타격 전에 하는 행동은 일본 프로야구에서 활약하던 몇 년 전이나 메이저리그에서의 지금이나 한치의 오차도 없다. 방망이를 든 오른팔을 투수쪽으로 향한다든가, 배트를 빙빙 돌리는 것, 고개를 몇 번 흔드는 것까지도 똑같다. 이에 대한 이치로의 대답. “어떤 사람들은 이상하게 생각할지 몰라도 경기력에 효과가 있다면 굳이 바꿀 필요가 있겠는가.”
<김상수기자>ssoo@donga.com
▲이치로가 올시즌 메이저리그에 남긴 기록들▲
△242안타〓1930년 빌 테리(254안타) 이후 최다
△타격왕(0.350) 도루왕(56개) 동시 석권〓1949년 재키 로빈슨 이후 처음
△타율 3할5푼대와 50도루 이상 동시 기록〓1922년 이후 아메리칸리그 처음
△한 시즌 세 차례 15경기 이상 연속 안타〓1980년 세실 쿠퍼 이후 처음
△135경기에서 안타〓메이저리그 타이
△최단 경기(61게임) 100안타〓1939년 조 디마지오와 타이
△득점권 타율(0.445)〓조지 브레트, 토니 그윈, 폴 몰리터에 이어 역대 4번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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