훌륭한 도로와 뛰어난 자동차로 인해 유럽 최고의 ‘운전자 천국’이라 불리지만 운전면허를 취득한 뒤 교통법규를 올바로 준수하며 이 모든 혜택을 누리기란 쉽지 않다.
99년 기준 자동차 1만대당 교통사고 사망자수는 1.8명으로 한국의 11.1명과는 비교가 되지 않느다. 독일의 엄격한 운전면허 제도와 운전면허 취득자를 모두 ‘모범운전사’로 바꾸는 교통위반 처벌제도를 2회에 걸쳐 알아본다.
▽운전하기 전 모든 것을 배운다〓4일 독일 베를린 나호드 거리에 위치한 ‘한스 발터 레게 파르슐레’에는 오후 4시를 넘어서며 30여명의 수강생이 모여들었다. 파르슐레(Fahrschule)는 운전 학원을 뜻하는 독일어.
베를린에 있는 수백개의 파르슐레가 그렇듯 이 곳도 30여평 크기의 사무실에 접수 창구와 10여평 강의실 1개만 마련돼 있을 뿐 한국의 운전학원 처럼 주행코스 시설은 없었다.
이론 수업을 처음 수강하는 대학생 발터 헤르만씨(20)는 쏟아지는 운전 교육강사의 질문에 곤혹스런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이 슬라이드에서 보이는 것 처럼 도심을 달리는 전차 옆을 운전할 때는 어떤 위험상황을 예상해야 하죠?”
“도심 전차와 운전자의 차 하고는 몇 m나 떨어져야 할까요?”
14시간 이상 받아야 하는 이론 수업은 이처럼 질문응답식, 토론식으로 이뤄진다. 그 이유는 운전면허 필기시험이 교통법규 내용을 묻는 것이 아니라 사진 그림 등을 보여주고 운전자의 판단과 행동요령을 주로 묻기 때문이다.
정답도 한 개만 있는 것이 아니라 보기에서 2개 이상의을 골라내야 하는 것도 있어 한국의 암기식 문제풀이 요령은 통하지 않는다.
각기 배점이 다른 30개의 문제(108점 만점)를 풀어 9점 이상을 틀리면 불합격이다.
학원장 한스 목테요브씨(72)는 “필기 시험에 합격하기 위해선 적어도 세 달 이상은 열심히 공부해야 한다”며 “합격기준이 높은 것은 시험에 나오는 내용이 운전자가 알아야할 최소한의 지식과 행동요령이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연습은 실전처럼, 실전은 연습처럼〓5일 주행교육을 받고 학원으로 돌아온 한스 올리븐씨(30)는 온 몸이 땀에 젖어 있었다.
이날 받은 주행교육은 ‘스트레스 상황 하의 도로주행’으로 2시간 이상 쉬지 않고 고속도로를 주행하는 것이었다.
올리븐씨는 “이론 시험에 합격한다 하더라도 면허 취득까지는 아직 산 넘어 산”이라며 뻐근한 어깨를 주물렀다.
실기 시험 전에 받아야 하는 주행교육은 30시간 이상의 일반도로 주행교육 외에도 야간, 시외도로, 고속도로 운전 등으로 이뤄진 12시간 이상의 특수상황 교육이 있다. 교육비는 최소 1300마르크(한화 70여만원)으로 적지 않다.
도로 주행교육은 물론 실제 도로에서 이뤄진다. 연습은 실전처럼, 실전은 연습처럼 해야 한다는 평범한 논리지만 운전 교습자의 차량을 느긋한 마음으로 지켜볼 줄 아는 ‘선배 운전자’의 자세도 본받을 만했다.
실기 시험은 시험 신청자가 원하는 장소와 시간을 정하면 면허시험을 주관하는 ‘운전·자동차 기술감독원(T¨UV)’ 소속 시험감독관이 도착해 인근 도로와 시외도로 등지에서 최소 50분 이상 진행된다.
두 달 전 운전 면허를 취득해 5일 베를린 중심의 한 중고차 가게를 찾은 미하엘 베르난씨(28)는 “단 한번의 실수가 바로 불합격으로 이어지고 시험감독관이 넌즈시 신호위반이나 차선 위반을 종용하기도 해 정신을 바짝 차려야 했다”며 어려웠던 실기 시험을 회고했다.
운전·자동차 기술감독원의 안드레아스 로제(44) 수석 감독관은 “독일의 운전면허 제도는 자동차를 운전할 수 있는 사람에게 면허증을 쥐어주는 것이 아니라 자동차, 도로, 인간을 한꺼번에 이해할 수 있는 건강한 시민을 만들어 내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베를린〓최호원기자>bestiger@donga.com
▽자문위원단〓내남정(손해보험협회 상무) 설재훈(교통개발연구원 연구위원·국무총리실 안전관리개선기획단 전문위원) 이순철(충북대 교수) 임평남(도로교통안전관리공단 교통사고종합분석센터 소장) 김태환(삼성화재 교통안전문화연구소장)
▽특별취재팀〓오명철부장대우(팀장) 구자룡(경제부) 서정보(문화부) 송진흡 남경현(사회2부) 신석호(금융부) 최호원기자(사회1부)
▽손해보험협회 회원사(자동차보험 취급 보험사)〓동양화재 신동아화재 대한화재 국제화재 쌍용화재 제일화재 리젠트화재 삼성화재 현대해상 LG화재 동부화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