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깍발이라는 것은 남산골 샌님의 별명이다.’ 이희승의 산문집 ‘딸깍발이’에 나오는 한 대목이다. 진날 갠날 나막신 신고 딸깍거리며 궁상을 떨쳐버리지 못한 남촌의 가난한 선비요, 이른바 깍쟁이를 이르는 말일 터다. 그러나 북촌(北村)은 사대부와 대감들의 집이 즐비하여 이와 대조를 이루었다.
서울 음식에서 남주북병(南酒北餠)이란 말은 이렇게 해서 생겨난 것이다. 우리 국토에서 이를 확장하면 남창북무(南唱北舞)니 남남북녀(南男北女)니 하는 가락을 띠고 나타나기도 한다. 김치를 담그는 데도 남북 현상이 있고 떡이나 만두를 빚는 데도 모양새나 맛이 현저히 다르다. 옛날에야 4대문 밖 강남(江南) 사람들은 별볼일 없이 강 건너 불구경이나 했던 땅인데 지금은 사정이 달라져 흥청망청(興淸亡淸)은 역시 강남 땅일 터다.
한강이 오염되지 않았을 때만 해도 허목 대감이 빙어를 다 잡았다 해서 미수어라 불렀고, 왕십리의 미나리는 샌님들이 좋아하여 미나리 강회라 불렀다. 한강 잉어탕도 여름 보양식이었고, 자라 또한 궁중음식인 용봉탕으로 보기(補氣)식품이었다. 북촌에서는 개장국과 파를 꺼려 복날 민어탕을 끓였지만 4대문 밖에서는 개장국을 즐겨(정조대왕도 먹은 기록이 나오지만) ‘복날 개 패듯했다’는 속담도 생겨났다.
퓨전 시대를 맞이하고 보니 궁중의 12첩 반상이나 반가의 9첩, 7첩 등 상차림의 맥도 끊긴 지 오래다. 궁중에서 신선로는 열구자탕, 반가에서 전골틀은 벙거지꼴, 찌개는 조치, 조림은 조리개, 장아찌는 장과, 깍두기는 송송이, 숭늉은 차수라 했던 것처럼 수라-진지(양반)-밥(상민)-진메(귀신)-물밥 등 흥부전에는 계층어도 제법 다양하다.
생선가시를 뱉는 통을 ‘비아통’이라 했는데 지금은 어느 한정식 집을 가보아도 비아통은 없고, 우주의 중심을 떠받드는 밥상 가운데의 장종지 또한 자취를 감춘 지 오래다. 상다리가 휘게 나오는 음식을 보며 이것만이라도 지켜줬으면 하는 것이 필자의 욕심이다.
강남구 역삼동 신한은행과 하나은행 사이로 뚫린 골목길 50m 전방, 왼쪽에 있는 금봉(今烽) 한정식집(한영준 사장·02-556-2632)은 퓨전과 전통 교자상을 함께 낸다. 전통적인 궁중요리를 강남교자상, 역삼교자상, 금봉교자상으로 나누어 ‘강남’과 ‘역삼’을 중국+일본+양식+한정식 등 퓨전 요리로 내고 금봉교자상은 12첩 반상으로 맛깔과 형식을 구비하였다.
교자상은 1인 기준으로 강남이 2만8000원, 역삼이 3만8000원, 금봉은 5만원인데 입맛에 맞도록 선택할 수 있어 편하다. 또 퓨전 전문 컨설팅으로 기본 6첩(?), 금봉 12첩으로 양분된다. 2층은 매, 란·국·죽·송 등 50여명을 수용할 수 있는 방이 있고, 중앙에 연주실이 있어 가야금 병창 등을 연주하는데 특히 일본 관광객들에게 인기가 있다.
한정식은 무엇보다 접대의 격식이 따라야 하는데, 문 앞에서부터 손님을 맞아 자리에 안내하고 음식이 한 순배씩 나올 때마다 재료와 취향 등 간략한 소개와 함께 제대로 즐기는 방법을 자상하게 소개한다. 낮것상(점심)에는 인근 직장인들을 위해 갈비구이, 삼치구이, 장어구이를 한정식 단자와 섞어 내놓는데 가격은 5000~2만원대다. 뚝배기불고기와 김치전골, 곱창전골도 인기다.
그러나 필자가 추천하고 싶은 음식은 예대로 맛이 변하지 않고 있는 용봉탕(800g)으로 궁중음식대로 자라와 닭을 쓰는데 15만원이면 접대로 일품일 듯하다. 또 꽃게장정식(1만9000원)이 별미인 것 같다. 이 밖에도 신세대 입맛으로는 로스트편채나 올리브향 또는 오렌지 소스를 친 대하찜도 괜찮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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