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이승헌/“TV광고 보다 날 새겠네”

  • 입력 2001년 11월 26일 18시 34분


방송사가 광고시간과 유형을 맘대로 결정할 수 있는 ‘방송광고 총량규제 제도’가 도입될 것이라는 기사(본보 26일자 A1·3면)가 나간 뒤 어느 대학의 신문방송학과 교수가 기자에게 전화를 걸어왔다.

이 교수는 기자에게 “방송사들이 총량제를 실시해 번 광고수입을 고스란히 디지털로 전환하는 데만 사용할 것 같습니까”라고 물었다. 그는 SBS가 9월부터 자사 인터넷사이트에서 TV 프로그램을 동영상으로 보는 데 편당 500원(한 시간 기준)을 받아 시청자들이 격렬하게 항의하고 있는 사실을 지적하면서 방송사의 지나친 상업주의를 비판했다.

방송사들은 디지털 방송체제로 전환하는 데 2조원 이상이 든다며 광고총량제와 중간광고 도입을 줄기차게 요구해왔다. 방송위원회가 얼마 전 중간광고 허용 방침을 밝히면서 적용 대상에서 공영방송을 제외하자 현재 공영방송으로 분류되어 있는 MBC가 ‘지상파 말살 음모’ 등을 거론하며 반발할 정도였다.

하지만 방송사들의 주장에는 방송사의 방만한 운영에 대한 반성이나 총량제 실시가 불러올 시청률 과당 경쟁, 프로그램 저질화를 우려하는 목소리는 거의 없었다.

방송위원회에 따르면 지난해 KBS의 총비용 대비 인건비 비율은 37.2%로 같은 기간 일본 NHK(31.1%), 독일 ZDF(22.2%) 등 다른 나라의 공영방송보다 최대 15%까지 높다. 요즘도 아침이면 전날 시청률표를 붙들고 “잘 나가는 누구누구를 빨리 섭외하라”며 시청률에 목숨 거는 게 여의도 방송가 풍경이다.

한 지상파 방송 PD는 “총량 규제를 도입하면 우리야 돈 버니까 좋지만 ‘여인 천하’나 ‘태조 왕건’ 보려고 10분 넘게 광고를 보는 상황도 생길 것”이라고 말했다. 시청자는 안중에 없는 방송사의 ‘엄살’과, 역시 시청자를 무시하고 방송사부터 챙기는 정부의 결정으로 피해는 고스란히 시청자들에게 돌아갈 판이다.

이승헌<문화부>dd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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