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돈벌이'에 밀린 방송공익성

  • 입력 2001년 11월 26일 19시 07분


방송, 특히 지상파 방송은 공익성이 생명이다. 방송 전파는 국민의 소유인 데다 국민에게 미치는 영향 또한 크고 넓기 때문이다.

정부가 방송광고의 전체 분량만 규제하고 광고의 유형, 횟수, 길이 등은 방송사가 자체적으로 정하도록 한 ‘방송광고 총량규제제도’를 도입하기로 한 것은 이 같은 방송의 공익성을 훼손하는 쪽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 방송사의 광고 편성이 사실상 자율화돼 시청자들의 권리인 시청자 주권이 그만큼 침해당할 소지가 많아지는 것이다.

이 제도가 도입되면 방송사들은 광고비가 비싼 황금시간대에 광고를 집중 배치하게 된다. 문화관광부는 부인하고 있지만 결국은 프로그램 중간에도 광고를 내보낼 수 있는 길이 열리는 것이다. 이 경우 시청률이 높은 프로그램에 광고가 몰리게 되고 방송사간 시청률 경쟁은 더욱 심해질 수밖에 없다. 프로그램의 상업화는 방송내용의 질적인 하락을 초래할 것이다.

무엇보다 중간광고가 도입되면 프로그램 진행이 중간중간 끊겨 흐름을 잃게 되고 시청자의 볼권리를 침해하게 된다. 시청자들은 TV를 보다가 수시로 허리를 끊고 들어오는 광고를 울며 겨자먹기로 바라볼 수밖에 없다. 광고주만 만족시킬 뿐 시청자의 이익과는 전혀 관계가 없는 것이다.

특히 광고료의 인상은 시청자의 부담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광고료가 많이 포함된 상품은 단가가 인상될 수밖에 없고 결국은 물가 인상을 부추기게 된다.

정부는 광고총량제 도입 이유로 지상파 방송3사의 디지털방송 참여 재원 마련과 내년 월드컵 광고특수를 들고 있지만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디지털방송을 하려면 방송사 스스로 재원을 마련해 별도로 투자해야지 이를 시청자에게 전가해서는 안 된다.

방송사는 시청자의 부담을 가중시키는 광고총량제나 중간광고 허용 요구에 앞서 경영혁신부터 하는 것이 순서일 것이다. 정부도 이런 차원에서 방송사를 독려해야 한다.

정부는 현 정권 들어 각종 개혁 작업의 와중에서 권력의 논리만을 일방적으로 옹호해 준 데 대한 보답으로 방송사의 ‘돈벌이’를 묵인해 주는 것 아니냐는 비난이 나올 수도 있다. 또 내년 지방선거와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방송사측의 요구사항을 들어줌으로써 방송을 계속 정권의 편으로 껴안으려 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올 수 있다.

방송정책의 중심에는 늘 방송소비자인 시청자가 있어야 한다. 방송사나 업체의 이익을 우선하는 정책이 돼서는 안 된다. 방송은 ‘돈벌이’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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