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주기식 對北철학 구멍▼
얘기를 듣고 모두 크게 웃었다. 근래 한국정치의 경험이 연상되었기 때문이다. 정치에서 속죄양을 만들어 국면 전환을 꾀하는 것은 상투적인 일이다. 권력의 집중도가 심할수록 그런 술수를 쓰고 싶은 유혹에 빠진다. 현재의 정부도 안타깝게 대북 문제를 두고 비판적인 언론에 잘못 손을 대면서 빠져나가기 어려운 난관에 봉착, 여당 총재는 그 직을 사임하고 이제는 물러날 준비를 하고 있는 중이다. 재야 시절에 통하던 요령정치가 그대로 국정에까지 연장되었을 때 빚어내는 혼란이 어떤 것인가는 비단 현정부에서만 경험하게 되는 것은 아니지만 그 경험의 교훈을 현정부는 배우지 못하고 결국 권력의 종국에 이르게 되었다.
현 정부는 두 마리 토끼를 쫓다가 한 마리도 옳게 잡지 못하고 다 놓치고 말았다. 경제와 햇볕이 그것이다. 대북 문제는 적어도 현정부의 잔여임기 동안에는 더 이상 별다른 진전이 있을 것 같지 않다. 베를린선언에서 마치 북의 경제를 총체적으로 부흥시켜 줄 것처럼 화려한 약속을 해놓고 그것을 지키지 않는다는 것이 북의 주장이고 보면 김정일의 방문을 기대할 수도 없거니와 햇볕정책의 운명을 다음 정권으로 넘기지 않을 수 없게 된 사정도 알 만하다.
대북 문제에 대한 접근은 근본적으로 그 밑에 깔린 철학에 문제가 있었다. 북을 지원하면서 우리도 함께 변하여 자본주의와 사회주의를 혼합한 사회민주주의적으로 체제가 수렴되면 통일에 평화적으로 접근할 수 있다는 것이 그 철학이었다. 이 철학은 아마도 대통령이 좋아하는 서유럽, 특히 북유럽 복지국가들을 모델로 잡은 것에 연유한 듯하다. 이것은 오판이었다.
경제체제의 공동화로 정치체제가 통일될 것이라는 것은 전형적인 경제주의적 발상이며 사실을 무시한 ‘진보적’ 이데올로기의 맹점이다. 북도 남도 같은 산업화를 추구했고 그 추구의 정치적 방식은 서로 달랐다. 이것은 과거 양극화시대의 강대국들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였다. 동일한 물질적 풍요의 추구가 필연적으로 한가지 방법의 선택만을 요구하는 것이 아님은 20세기의 엄연한 사실이었다. 따라서 남의 복지정책이 통일이라는 정치적 목적에 다다를 것이라고 여겼다면 이는 막연한 희망은 될지언정 현실적인 사고는 아니다.
남북문제를 떠나 복지를 추구하는 것이 그 자체로 하등 나쁠 것이 없다. 문제는 그것을 뒷받침할 수 있는 경제성장력이 보장되어 있느냐 하는 것이다. 이 점에서도 현정부는 실패했다고밖에 볼 수 없다. 성장이니 국민소득이니 하는 용어들은 벌써 시들해지고 그 대신에 정보사회니 신지식이니 하는 말들이 난무하고 있다. 여기에도 현정부의 현실인식에 문제가 있었음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정보화 쫓다 제조업 악화▼
정보사회라는 것은 산업사회의 요체인 과학과 기술의 새로운 국면을 말하는 것일 뿐 그 자체로서 다른 사회형태를 지닌 것은 아니다. 신지식인이라는 것도 산업생산력이 뒷받침된 위에 주로 3차산업의 차원에서 문제되는 것이다. 이러한 내용을 잘못 이해한 탓에 이 정부 들어 산업생산력에 직결되는 제조업은 날이 갈수록 그 상태가 악화되어 온 것이다. 말하자면 경제가 사상누각의 모습을 띠어온 것이다. 그러니까 당연히 경제는 만성적인 난관에 부닥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서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지금도 경제 살리기에 총력을 기울이겠다고 하지만, 시간도 시간이려니와 근본적인 인식내용이 바꾸어지지 않는 한 방향조차 제대로 잡을 수 있을지 의문이다. 희망은 다시 다음으로 넘기는 수밖에 없으나, 희망 제공을 자처하고 나선 사람들의 그 흔한 말들 속에 아직 알맹이가 보이지 않아 안타깝다.
(전 국무총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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