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信保 비판했다고 구독거부라니

  • 입력 2001년 11월 29일 18시 28분


정부출연기관인 신용보증기금이 비판적인 기사를 보도했다는 이유로 본점과 지점은 물론 직원들의 개인별 동아일보 구독 현황까지 파악한 것은 결코 가볍게 넘길 사안이 아니다. 집단적인 구독 거부를 종용하려는 것이라고 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신보는 지난달 본점 기금서무계와 각 지점 등 100여곳에 ‘동아일보 구독 현황 파악’이라는 제목의 전자문서를 보내 사무실 및 개인이 구독하고 있는 동아일보의 총부수를 파악해 연락하라고 지시했다. 이 기금의 홍보팀장은 동아일보 기사를 보고 신보의 단합된 힘을 보여줘야 한다는 생각에서 지시를 내렸다고 밝혔다.

비판 기사를 썼다고 집단으로 구독을 거부하는 것은 언론자유를 억누르던 과거 독재정권 때나 있었던 일이다. 더욱이 개인별 구독 현황까지 파악하라고 했다니 어느 조직이 구성원 개인에게까지 특정 신문을 보라 말라할 권한이 있단 말인가. 이는 개인의 언론선택권에 관한 문제로 기본권 침해의 소지까지 안고 있다.

다시 강조할 것도 없이 언론의 기본적인 기능은 비판이다. 사회 곳곳의 잘못된 일을 지적해 경각심을 불러일으키고 개선하도록 촉구하는 것은 언론의 본질적 임무다. 신보는 공공자금으로 운영되는 기관이며 그 동안에도 운영과 관련해 이런 저런 말이 많았던 곳이다. 그만큼 언론의 감시 감독도 철저해야 하는 것이다.

동아일보가 보도한 내용도 신보의 융통어음 사기피해사건과 경영진의 은폐 의혹, 전 임원의 보증 외압사례와 검찰 수사, 신보의 방만한 운영 사례 등 국민이 당연히 알아야 할 사항이었다.

그런데도 ‘신보의 단합된 힘’운운하며 그처럼 집단적으로 대응하겠다는 것은 절차를 무시한 치졸한 발상이다. 문제가 있다면 언론중재위 제소 등 관련법 절차에 따라 대응하면 되는 것이다.

더욱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상황의 심각성을 전혀 모르는 것 같은 신보 이사장의 안이한 자세다. 그는 전자문서 발송 사실을 나중에 알았으며 실무자가 자의적으로 보낸 것이라고 했다니 그 말을 누가 믿겠는가.

지금의 한국 언론은 공공기관 하나 하나까지 자신들의 마음에 맞지 않는 기사가 나오면 발끈해서 ‘구독 거부’를 외칠 정도로 초라해지고 있다. 우리는 이 같은 상황이 최근의 ‘언론사태’과정에서 권력측이 특정 신문에 보여준 태도 때문이 아닌지 묻고 싶다.

신보의 감독기관인 재정경제부는 철저한 진상 규명과 함께 납득할 수 있는 조치를 취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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