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성경륭/쿠오바디스 민주당

  • 입력 2001년 11월 29일 18시 29분


최근 한 여론조사기관이 전 국민을 대상으로 실시한 신뢰도 조사 결과는 우리에게 큰 충격을 준다. 이 조사에서 시민단체를 신뢰한다는 응답자의 비율이 73.2%에 이르렀으나 정당을 신뢰한다는 비율은 10.6%, 국회를 신뢰한다는 비율은 8.7%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기 때문이다.

▼대선 권력투쟁 점입가경▼

이처럼 정치권에 대한 불신이 고조되어 있는 상황에서 마침 민주당은 내부 개혁을 위한 큰 홍역을 치르고 있다. 지난 재·보궐선거에서 참패한 이후 그간 잠복해 있던 갖가지 문제들을 중심으로 생존을 향한 당내 민주화 운동을 벌이고 있는 것이다. 지금까지의 논의를 살펴보면 한국 정당정치의 고질적 병폐인 1인보스정치, 파벌정치, 지역분할정치 등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집단지도체제, 예비선거제, 정당명부제의 도입을 적극 검토하고 있다고 한다.

전체적으로 방향은 올바르게 잡았다고 판단된다. 그러나 문제는 민주당의 당내 민주화 운동이 차기 대선 후보를 선출하기 위한 권력투쟁과 함께 진행되고 있다는 데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민주당의 쇄신운동이 대선을 향한 권력투쟁에 매몰되어 용두사미가 될지도 모른다는 점에 대해 큰 우려를 표명하지 않을 수 없다.

현재 민주당에서 진행되고 있는 일들이 ‘집안 잔치’나 ‘집안 싸움’에 머물지 않고 한국정치를 한 단계 도약시키는 계기가 되려면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요건이 충족되어야 한다.

첫째, 이번 기회에 민주당은 반드시 1인 보스가 지배하는 전 근대적 사당(私黨)체제를 모든 당원이 주역이 되는 현대적 공당 체제로 변모시키는 시스템 혁명을 이루어야만 한다. 이를 위해 현재 논의되고 있는 상향식 공천제와 예비선거제를 어떤 형태로든 도입해야 한다.

둘째, 민주당은 3김 시대와 함께 끝나고 있는 카리스마적 리더십에 대응해 새로운 리더십을 창출하는 실험을 해주기를 기대한다. 3김 이후 민주체제의 성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어떤 리더십이 등장해야 하는가. 이 문제에 대해 미리 어떤 해답을 제시할 수는 없으나 대체로 다양성을 존중하면서 통일성을 살려내는 ‘모자이크형’ 리더, 화합 속에서 여러 그룹들의 협력을 이끌어낼 수 있는 ‘네트워크형’ 또는 ‘팀워크형’ 리더가 차세대의 리더십이 아닌가 생각된다.

셋째, 한 걸음 더 나아가 민주당의 개혁은 궁극적으로 현재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갖가지 어려움을 정확히 진단하고 새로운 도약을 이룰 수 있는 노선 및 정책상의 쇄신으로 귀결되어야 한다. 우리 모두가 목도하고 있듯이 지금 국내외 사정은 극도로 불안정하다. 탈냉전과 신냉전의 교차, 뉴욕 테러사건과 아프가니스탄 전쟁의 발발, 남북관계의 경색, 한국경제의 대외적 취약성 증가, 불평등의 급증, 이익갈등의 심화, 정책집행의 좌절 등은 우리가 겪고 있는 대표적인 문제들이다. 민주당은 이런 문제들에 대해 새로운 노선과 해답을 제시해야만 한다.

민주당이 진실로 국가와 국민을 위하는 정당이라면 대선을 향한 권력투쟁에 사로잡혀 당내 개혁과 새로운 노선의 정립을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 민주당은 낡은 이념에 얽매여 정치적 패배를 거듭하던 영국의 노동당이 1995년 이후 ‘제3의 길’이라는 새로운 비전과 노선을 정립함으로써 집권에 성공하고 영국을 부활시키는 데도 성공한 경험에서 귀중한 교훈을 얻어야 한다.

▼정책정당으로 거듭나야▼

민주당이 신 노선으로 무장해 명실공히 정책정당으로 발돋움하게 되면 이는 곧 한나라당에 대해서도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다. 그리하여 두 정당은 2002년의 두 차례 선거에서 국민을 살리고 나라를 튼튼히 하는 멋진 정책경쟁을 벌일 수 있게 될 것이다.

쿠오바디스, 민주당? 그 길은 바로 당내 쇄신을 통해 새로운 비전과 노선을 수립하는 정책정당으로 변모하는 데 있다. 우리는 그 길이야말로 민주당이 국민에게 희망을 주고 국민으로부터 진정한 신뢰를 획득하는 길이라고 믿는다. 그리고 바로 그 길은 한나라당이 가야 하고 한국의 모든 정당들이 가야할 길이기도 하다. 이런 변화를 통해 한국의 정당들이 권력과 이권을 추구하는 정당에서 국민에게 봉사하는 정책정당으로 거듭나기를 기대해본다.

성경륭(한림대 교수·사회학

본보 객원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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